아사히 신문 소신과 파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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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이 3일 ‘평화헌법’ 발효 60주년을 맞아 8개 면에 걸쳐 실은 21개의 사설. 세로쓰기인 일본 신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기기 때문에 1면이 맨 오른쪽에 있다.

진보 성향의 일본 유력지인 아사히(朝日)신문이 3일 평화헌법 발효 60주년을 맞아 헌법 9조의 유지 등을 촉구하는 사설 21개를 동시에 싣는 파격을 보였다.

아사히는 이날 1면 머리기사로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논설주간의 '세계에 공헌하는 국가가 되자'란 기사를 싣고, 17면부터 24면까지 8개 면에 걸쳐 21개의 사설을 게재했다.

와카미야 주간은 1면 기사에서 "오늘 21개의 사설은 지난해 4월부터 아사히가 전개해 온 기획시리즈 '새 전략을 찾아서'의 집대성"이라며 "8개 면에 걸쳐 사설을 싣는 것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일이나 신문사의 '결의의 표현'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아사히는 또 "전쟁 포기를 규정한 9조를 갖고 있는 헌법은 일본이 세계에 공헌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 매우 귀중한 자산"이라며 "이 때문에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대신 신문은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9조 조항과 자위대의 존재 사이의 괴리를 메우기 위한 대안으로 '평화안전보장기본법'의 제정을 제안했다. 아사히는 "또 유엔 주도의 평화구축 활동 때에도 일반 군대와는 다른 자위대의 특성을 지키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헌법 개정에 적극적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한 강한 비난도 담았다. 외부를 향해 일본의 평화외교를 자랑하는 아베 총리가 그 토대인 평화헌법에 대한 긍지는 밝히지 않은 채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21개의 사설은 '총론' '지구와 인간' '글로벌화와 아시아.이슬람' 헌법 9조와 평화.안전보장' '일본의 외교'의 항목으로 나눠 '9조의 역사적 의의' '9조 개정의 시비' '자위대' '소프트파워''외교력' 등의 제목을 달았다.

한편 아베 총리는 이날 담화를 발표해 "전후 체제를 원점으로 돌아가 대담하게 재조명하고 새로운 일본의 모습 실현을 위해 개헌 논의를 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펼쳐 나가는 정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개헌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했다. 총리가 헌법 기념일에 담화를 발표한 것은 1997년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이후 두 번째다.

그러나 당시 하시모토 총리는 평화헌법의 기본이념을 존중한다는 뜻을 밝혔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 일본의 평화헌법=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1946년 11월 공포한 헌법이다. 이 가운데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은 9조가 핵심이다. 그래서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방어 목적 이외의 군대 보유와 해외에서의 군사행동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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