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친일 재산 환수의 의미와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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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그저께 이완용 등 대표적인 친일파 9명의 후손이 보유한 36억원(공시지가 기준) 상당 토지를 국가에 귀속하기로 결정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 특별법이 2005년 제정된 후 첫 성과다. 해방 후 반민특위가 친일파들을 엄단하려 했으나 정국 혼란 속에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반세기가 지나서야 반민족 행위에 대한 심판이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한다.

일제 식민지시대는 우리 민족사의 최대 아픔이었다. 한민족의 이름과 한글까지 말살될 뻔했다. 해방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종군위안부 등 상처는 깊게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을 일본에 팔아넘기고 적극 협력한 대가로 부.명예.권력을 움켜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런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은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고, 현대에 교훈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의미 있다고 본다.

특별법에 의해 정해진 조사 대상자는 452명이다. 환수 대상 재산은 1904년 러일전쟁~1945년 광복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받거나 상속받은 재산 등으로 한정됐다. 합리적인 기준이라고 보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법적 논리에 따라선 소급입법을 통해 사유재산을 박탈하는 것이 헌법상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연좌제란 비판도 있다. 친일파 후손들이 행정소송이나 헌법소원을 낼 가능성도 크다.

위원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매우 정확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가시적인 성과에 급급해 무리하다가 사회 갈등과 혼란을 불러일으켜선 안 된다. 친일재산 환수의 근본 의미는 재산 박탈 자체보다는 올바른 역사 만들기에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후손이란 이유로, 그들이 명예훼손 등 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위원회는 개인정보 보호 등 조심해야 한다. 정부나 정치권이 포퓰리즘적으로 악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역사 바로잡기의 취지는 우리 사회가 분열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 잘못을 바로 고치고, 참된 화합으로 가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