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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17) 서울 노원갑 열린우리당 신형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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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출판사의 베스트셀러 『세계철학사1,2,3』『정치경제학원론1,2』는 1980년대~19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익숙한 금서(禁書)다. 당시 녹두의 대표는 이 책들을 출간한 죄로 세 차례 옥살이를 했다. 지금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엔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 장본인인 신형식(43) 전 녹두출판사 대표가 출사표를 던졌다.

“새로운 정치 환경과 새로운 가치는 기본적으로 도덕성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젊은 날의 순수함과 열정, 도덕성과 실천력으로 일관된 삶의 궤적을 그려온 분들이 이 나라 정치환경의 개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는 “대한민국은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내야 하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면서, “이런 새 환경은 과거 정치로부터 자유롭고 도덕성이 검증된 사람들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내세우는 강점은 깨끗하고 개혁적인 이미지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부끄러움도 후회도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그의 대학시절은 박정희 정권 말기에서 5·18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대였다. 자연스레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다. 1984년 학원자율화 조치로 복학을 했지만 사회에 순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매달린 것이 출판업이었다. 스스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운동 하는 사람들의 취약한 재정을 뒷받침하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문을 연 것이 바로 녹두출판사였다.

▶신형식씨가 출마하는 서울 노원구는 그의 아내가 지난 1988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해온 곳이다. 아내의 학부형과 제자들이 모두 유권자인 셈이다. 사진은 1995년 12월 30일 신씨가 아내와 두 아들, 아들 친구들, 학부형들과 함께 노원구에 있는 서울시립노인 요양원을 찾아 위문품을 전달하는 모습(가운데 안경 낀 사람이 신씨.)

1991년 세 번째 징역살이를 끝으로 출판업을 접은 그는 몇몇 민주화 운동단체를 거쳐 21세기 전략아카데미, 희망의 정치를 여는 젊은 연대, 개혁신당, 통합민주당 등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1백50여 명의 3,40대 각계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미래정경연구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저에게 정치는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개혁과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치권에 한때 미련조차 버렸었어요. 하지만 정치를 팔짱끼고 혐오의 눈으로 바라보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그 동력으로 정치판을 새로 짜야 합니다. 미봉에 지나지 않는 개선이나 개량으로는 구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치판 새 판 짜기의 유일한 동력은 “국민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에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의 가장 큰 바람은 정치의 판을 바꾸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생존하는 길이라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 방법론으로 그는 민생정치를 지향하는 참여정치를 제시했다.

“어제까지의 정치풍토에서는 도덕성과 순수함, 역사에 대한 바른 자세와 신념, 용기, 정열보다 줄서기와 요령이 더 잘 통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왔느냐보다 화려한 이력서와 선거기간에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이 더 대우받았죠.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앞으로는 도덕성을 기반으로 신념을 지키는 정치인이 성공할 겁니다. 세상이 바뀐 거죠.”

그는 지난 16대 총선 때 노원 갑에서 공천 신청을 했다가 함승희 현 민주당 의원에게 밀렸다. 이번에 열린우리당 경선을 통과하면 그와 설욕전을 펼치게 된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개혁 세력이 결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개혁 의지는 강한데 이를 뒷받침할 세력이 취약합니다. 지금 결집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개혁 추진은 꿈도 꿀 수 없을 거예요. 이 일에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정권 출범 후 정치권 전반이 불안정한 것에 대해서는 기득권을 지닌 구태 정치인들이 새로운 환경을 불편해 하는 것이라며 새 국정운영 방식에 적응하고 새 틀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싶다고 낙관했다.

“제가 출간한 책을 읽고 구속 수감됐던 분들, 지금도 묵묵히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바른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개혁의 참 모습을 실천해 보이겠습니다.”

김경혜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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