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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덩강 할미꽃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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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Canon EOS-1Ds MarkⅡ 100mm f8 1/180초 ISO 100

우리 땅 중에서도 영월 동강 지역에서만 자생한다는 '동강 할미꽃'을 보려고 동강을 찾았습니다. 동강의 비경 중 으뜸이라는 어라연으로 가는 들머리 거운리의 비탈진 흙길을 걷는데, 발길마다 폴폴 이는 흙먼지에 아지랑이가 어립니다. 길섶 풀 더미엔 파란빛 고운 각시붓꽃이 꽃잎을 살포시 열었고, 수북한 돌 틈엔 샛노란 민들레가 햇살에 반들거립니다. 첩첩 산굽이를 돌아 흐르는 동강에도 봄기운이 한껏 스몄습니다.

옛날 떼꾼들이 황새여울 된꼬까리를 어렵사리 건너와 쉬어 갔다던 전산옥 주막 터. 거기 앵두나무의 하얀 꽃엔 벌과 나비가 꿀을 따느라 부산을 떱니다. 삐죽삐죽한 돌밭을 지나 강가로 가니 산벚꽃 잎이 강을 타고 흐르고, 먹이를 입에 문 물새는 이방인을 피해 호들갑스럽게 강을 거슬러 오릅니다. 동강 할미꽃은 보이지 않지만 강 좋고 산 좋으니 마음 급할 게 없습니다.

어라연에 거의 이르러서야 오매불망하던 동강 할미꽃을 만났습니다. 진한 자주색에다 어떤 놈들은 여느 할미꽃과 달리 하늘을 우러렀고, 또 다른 놈들은 동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작은 사랑채만 한 바윗돌의 비탈에 핀 대여섯 무리. 이놈들 참 생긴 것도 남다르지만 사는 곳도 특이합니다. 흙 좋고 넓은 산과 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살기 힘든 바위틈에 저들만 따로 자리를 튼 것이 여간 도도해 뵈지 않습니다. 그 기상이 도도하다 못해 고상합니다. 과연 동강 할미꽃입니다.

동강 할미꽃을 사진에 담고 서울로 돌아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철석같이 믿었던 이놈들이 동강 할미꽃이 아니랍니다. '처음 만나는 나무이야기'의 저자 이동혁 선생은 동강 할미꽃으로 진화하는 중간 종으로 판단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놈을 '덩강 할미꽃'이라 이름 붙였다며 우스개를 합니다. 또 한택식물원에서는 잎은 거의 흡사하나 꽃대와 꽃이 다르니 동강 할미꽃과 일반 할미꽃의 교잡종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동강 할미꽃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고, 동강 자체만으로도 신비로우니 그 품에 사는 식물들 또한 이토록 남다른 것이겠지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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