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선 '3대 속설' 안 통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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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대선을 앞두고 언론사 처음으로 패널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가 2일 나왔다. 패널조사는 동일 응답자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으로 의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기법이다. 중앙일보.SBS.동아시아연구원(EAI).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수행하는 이 패널조사는 대선 때까지 5회 더 실시될 예정이다. 패널여론조사는 경마식 보도에 머물렀던 기존 선거 판세 분석을 한 단계 높여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할 것이다.

여성

"여성은 여성을 찍지 않는다.""여성은 남편과 동일하게 투표한다."

여성의 투표 행태에 대한 일반적 속설이다. 하지만 올해 여심(女心)의 흐름은 이와 다르다. 여성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남성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더 선호한다. 박 전 대표의 평균 지지율은 22.2%다. 여성 응답자는 이보다 높은 25.2%가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반면 남성 응답자는 19.2%만 지지했다. 이 전 시장은 남성 응답자의 45.2%, 여성은 이보다 낮은 43.6%가 선호했다.

여성이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양상은 세대별로 큰 차이가 있다. 30, 40대 여성의 23.3%가 박 전 대표를 지지했다. 같은 연령대 남성의 지지율은 절반 수준이다. 50대 이상에선 여성의 지지율이 오히려 남성의 지지율보다 밑돈다.

20~40대의 성별 지지도 차이는 본격적인 고등교육을 받은 이 세대 여성들이 '여성이 여성을 더 잘 대표한다'는 성(性) 인지적 정치의식을 형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치적 이슈에서도 성별 차이가 드러났다.

남성과 비교할 때 여성은 경쟁과 효율성보다 조화와 약자의 보호, 질서의 유지보다 관용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편하더라도 집회나 시위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거나 '소득분배가 성장보다 중요하다'란 의견에 여성은 남성보다 높은 찬성률을 보인다. 특히 20~40대가 그렇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

세대

전통적으로 '386'세대(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는 범여권의 지지 기반이었다. 상대적으로 열린우리당 또는 민주노동당 지지가 많았다. 20~30대도 진보 성향을 보여 왔다. 이에 따라 지난 대선부터 세대별 선호 후보가 달라지는 '세대 투표' 양상이 뚜렷해졌다.

이번 대선 패널 조사에선 다른 조짐이 보인다. 386세대의 선택이 일반 국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44.9%가 한나라당 이명박 전 시장, 20.1%가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다. 과거와 달리 보수적 선택을 하는 셈이다.

'386 세대'가 가장 많은 소비 지출을 해야 하는 세대가 되면서 현실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범여권이 전통적인 지지 세력을 재결집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20~30대에도 변화 기미가 있다. 이들 중 스스로 보수라고 여긴 비율이 26%로 다른 세대(26.8~30.1%)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20대는 30대보다 더 보수적인 선택을 했다. 열 명 중 네 명(41.2%)꼴로 한나라당을 가장 좋아하는 정당으로 꼽았다. 전 연령대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42.2%다. 이 전 시장을 지지한다는 비율(46.6%)도 전 연령대의 평균치(44.4%)를 웃돌았다.

30대의 경우 한나라당을 좋아한다고 답한 비율이 32.6%, 이 전 시장을 지지한 비율이 42.8%로 20대보다는 낮았다. 두 세대 모두 지지도 2위 후보는 박 전 대표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

지역

1997년.2002년 대선에선 호남+충청 연대가 힘을 발휘했다. 올 대선에서도 동서 분할 구도(영남 대 호남+충청)를 꿈꾸는 정치 세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 패널조사에서 '수도권 대 비수도권'이란 남북 분할 구도가 동서 구도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수도권에서 전국 평균 지지율(44.4%)을 훨씬 상회하는 지지(50.7%)를 받는다. 수도권은 역대 선거에서 박빙으로 분류되던 지역이다. 특히 서울(53.3%)의 경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가 세 배다. 정반대 현상이 박 전 대표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과 호남을 제외한 비수도권 지역의 지지도(30.1%)가 평균(22.2%)을 상회한다. 특히 충청(28.2%)과 한나라당의 기반인 영남(30.5%)에서 강세다.

동서 분할 구도는 과거보다 현저히 약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호남은 범여권 주자에 대한 선호가 강하지만 이 전 시장에 대한 지지도도 30%에 달한다. 충청권에선 한나라당 '빅2'의 지지율 합계가 60%를 넘는다. 충청권을 범여권의 지지 기반인 '서부 벨트'에 편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로선 맞지 않는 셈이다.

두 가지 전망이 가능하다. 한나라당의 구태가 개혁되지 않는 상황에서 범여권의 강력한 주자가 부상하면 이 전 시장의 지지세가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점과 현재 흐름이 지속되면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의 외연을 넓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장수 고려대 교수

반한나라 연합 뜨면 …
지지층 넓으나 인물 없는 게 문제

범여권이 반한나라당 연합을 결성할 경우 국민적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아하는 정당과 싫어하는 정당을 물어본 결과 한나라당 지지자 중 42.2%가 열린우리당을 가장 싫어하는 정당으로 꼽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 지지자 56.8%를 비롯해 민주당 지지자 45.1%, 민주노동당 지지자 57.9%, 국민중심당 지지자 40%가 한나라당을 가장 싫어하는 정당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당장 반한나라당 연합이 이루어질 것으로 장담할 수는 없다.

첫째, 반한나라당 연합을 추진할 중심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반한나라당 연합에 참여할 정당 지지율이 열린우리당 11.8%, 민주당 5.1%에 불과하고, 통합신당모임 등은 미미한 수준이다. 전체 국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무당파도 45.3%가 싫어하는 정당이 없다고 밝혀 반한나라당 정서가 강하지 않았다.

둘째, 후보 중심의 반한나라당 연합 시나리오가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 힘들 것 같다. 한나라당 소속 대선 후보들의 강세에 비해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도가 미미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특정 후보를 구심점으로 한 연합이 결성될 여지가 작다. 손학규.정동영 등 범여권 선두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경우 차선책으로 범여권 후보보다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현재의 여론만 놓고 보면 범여권이 결집하더라도 상당수 지지자는 후보 선출 과정에서 한나라당 후보 지지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범여권 결집 효과가 미약하다는 결론이다. 범여권 반한나라당 연합에 희망을 걸고 있는 현 여권 지도부로선 곤혹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범여권 재결집 전략=범여권 지지자의 이탈이 심한 데 비해 한나라당 지지자의 결집은 공고하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 중 65%가 범여권 대선 후보 누구도 지지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열린우리당 후보 지지자 중 35%만이 범여권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후보 지지자 중 77%가 여전히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 혹은 보상으로서 투표 선택을 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범여권 지지층 재결집 전략은 의외로 간단히 도출될 수 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높이고, 가정 또는 국가 경제가 호전되었거나 최소한 악화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재결집이 가능하고 한나라당 후보 지지로 돌아섰던 범여권 이탈 층의 '재전환'(지지 복귀) 가능성도 나타날 것이다.

이내영.권혁용 고려대 교수

패널 여론조사는
같은 유권자 3500명 6차례 조사
경마식 여론조사보다 더 심층적

각 언론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여론조사는 대부분 특정 시점에 별도의 응답자를 모집해 조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회성 조사다. 이 방식은 개별 후보 지지율의 변화 추이를 보여주는 데는 유익하지만 변화의 주체(누가)와 그 이유(왜)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단순 지지도 위주의 조사 방식은 경마식 여론조사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패널 여론조사는 동일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어보는 방식이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는 사람과 의견을 바꾼 사람,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고 부동층으로 남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 또한 후보에 대한 평가나 투표 선호를 바꾼 사람을 대상으로 변화 이유와 동기를 정확히 끄집어낼 수 있다.

중앙일보.SBS.동아시아연구원(EAI).한국리서치는 17대 대선을 맞아 패널 조사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기로 했다. 네 개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한 것은 상호 협력을 통해 조사 관리의 어려움과 비용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패널 조사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다. 네 개 기관이 공동으로 패널 조사를 수행한 것은 2006년 지방선거 패널 조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 조사는 전 국민의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에 맞게 모집한 3500여 명의 대규모 패널을 대상으로 12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실시할 예정이다.

지난달 25~28일 전화면접으로 실시한 1차 패널 조사의 최대 허용 표집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1.7%포인트다.

김병국 고려대 교수 동아시아연구원장

<대선 패널 여론조사 연구팀 명단>

◇동아시아연구원=이내영(팀장ㆍ고려대), 김병국(원장ㆍ고려대), 강원택(숭실대), 권혁용(고려대), 김민전(경희대), 김성태(고려대), 김장수(고려대), 박찬욱(서울대), 서현진(성신여대), 이현우(서강대), 임성학(서울시립대), 진영재(연세대) 교수, 정원칠.정한울.이상협 연구원

◇중앙일보=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김정하 기자
◇SBS=현경보 차장
◇한국리서치=김춘석 부장, 박종선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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