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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헛발질 수사'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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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폭행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2일 오후 7시부터 서울 청담동 G가라오케 현장에 대한 재조사를 벌였다. 20여 명의 수사팀은 피해자들이 김 회장을 처음 만난 장소로 지목한 7.5평 규모의 8번 방, 김 회장 차남과 시비가 붙은 계단 입구 등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서울지방경찰청은 2일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에서 김승연(55) 회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 이광수 폭력2팀장은 "27층 회장실과 부속실에서 문서 위주로 압수수색을 했다"고 밝혔다. 압수수색은 오전 9시30분부터 5시간 동안 진행됐다. 하지만 압수품은 사건 당일 김 회장의 일정표와 지시 사항이 적힌 서류.메모 등 서류봉투 1개 분량에 그쳤다. 이 팀장은 "(한화 측이) 원하는 것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 허점 투성이 수사=경찰은 사건 발생 당일 김 회장의 휴대전화 사용을 주목해 왔다. 김 회장은 "청계산에 간 적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해 왔다. 만약 사건 당일 청계산 인근 기지국에 김 회장이 사용한 통화 기록이 잡힌다면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물증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김 회장이 본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파악했다. 있지도 않은 전화를 추적한 셈이다.

남대문서 장희곤 서장은 "김 회장 경호원들이 갖고 있는 휴대전화 40여 대의 사용을 추적하고 있다. 이동통신사에 의뢰한 내역 중 일부를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북창동 S클럽의 CCTV(폐쇄회로TV) 자료를 확보하는 데도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동안 경찰은 "CCTV가 오래전부터 작동되지 않는다"는 종업원들의 말만 믿고 있었다. 그러나 S클럽 공동 사장 김모씨가 1일 오후 CCTV 하드디스크를 갖고 있다며 경찰에 제출했다. 영상 저장 기간이 15일에 불과해 당시 기록은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기법개발팀이 일부 영상이라도 복구하길 기대하고 있다.

◆ 자택 차고 CCTV 확보 실패=경찰은 1일 서울 가회동 김 회장 자택 압수수색에서 차고 내 CCTV 자료를 확보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본체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사전 예고된 압수수색' 탓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할 뿐 속수무책이다.

압수수색에서 김 회장의 운동복 하의와 점퍼 등에서 채취한 흙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승용차 시트에서 발견한 흙과 나뭇가지, 씨앗 등도 분석 대상이다. 이를 청계산 공사 현장의 흙 성분과 비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달 가까이 지난 옷에 사건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다.

◆ 뒤늦은 친구 찾기=경찰은 김 회장 차남(21.미 예일대 재학 중)의 초등학교 동창생 이모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추진 중이다. 피해자들은 "이씨가 G가라오케부터 청계산, 북창동까지 사건 현장 세 곳에 모두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있는 유일한 제3의 목격자인 셈이다. 장희곤 서장은 "미국 유학생인 이씨는 출입국 기록 확인 결과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이라고 밝혔다. 이씨의 신병 확보를 위해 베테랑 수사관으로 구성된 전담팀까지 편성했지만 아직까지 소재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누군가 이씨를 은닉했다면 추적해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형법에 따르면 증인은닉죄는 5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형에 해당한다.

진술이 엇갈리는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

경찰은 일단 구체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도 피해자 진술이 신빙성 있어 사법 처리는 무난하다는 입장이다. 수사 관계자는 "범행에 쓰인 도구 같은 물적 증거가 없어도 믿을 만한 피해자 진술이 있으면 사법 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결국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는 사건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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