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학의 군대’가 다시 열광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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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16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54경기를 해서 1등을 하기가 더 어려운 건데, 정규리그 우승은 우승으로 치지를 않아요….”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창문을 통과한 석양이 살짝 벗어진 이마의 주름을 깊어 보이게 한다. 프로농구 모비스의 유재학(44) 감독. 늘 젊고 신선한 느낌만을 주는 그도 나이를 먹어간다. 가족을 미국에 둔 ‘기러기 아빠’의 외로움도 그의 주름을 깊게 했을까. 3일 오후 체육관 벽에 걸린 스피커에서 조지 윈스턴의 ‘겨울에서 봄으로(Winter Into Spring)’가 흘러나온다.

유 감독은 2006~2007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플레이오프를 준비하고 있다. 모비스는 지난 시즌에 이어 정규리그 2년 연속 우승을 이룩했다. 2위 LG와의 승차가 4경기나 됐다. 한 경기 차는 두 경기를 이겨야 줄일 수 있는 순위상의 거리다.

유 감독의 불만은 정규리그 우승의 가치를 낮게 보는 농구계의 분위기에 대한 것이다. 미국프로농구(NBA)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도 정규리그는 플레이오프를 위한 예선 정도로 치부되고, 정규리그 성적 상위 6개팀이 벌이는 플레이오프가 하이라이트로 대접받는다.

플레이오프는 이렇게 운영된다. 정규리그 1, 2위가 먼저 4강에 올라 기다린다. 그동안 4위와 5위, 3위와 6위가 3전2선승제로 1라운드에서 경기한다. 이긴 팀이 4강에 진출한다. 4강전은 5전3선승, 챔피언결정전은 7전4선승제. 1라운드부터 계산해서 9승만 하면 ‘진짜 우승’이다.

유 독은 고작 9승으로 왕중왕이 되는 제도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 속에는 플레이오프를 제패하지 못한 유 감독의 콤플렉스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프로야구처럼 4위와 3위의 승자가 2위와, 그 승자가 1위팀과 결승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리라.

유감독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2위팀 삼성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내리 4패를 당했다. 삼성은 체력 소모가 심하고 심적 부담이 큰 우승 다툼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장신 선수가 많은 삼성은 체력 싸움에서 모비스를 압도했다.

플레이오프 타이틀은 일종의 학위(學位)다. 여기서 우승해야 진짜 일류 감독으로 인정받는다. LG의 신선우 감독이 ‘신산(神算)’으로 대접받는 것도 세 차례(1997~98, 98~99, 2003~2004시즌)의 플레이오프 우승 경력 때문이다. 유 감독도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제도에 대한 그의 불만은 큰 목표 앞에서 갖게 되는 공포와 불안감의 다른 표현이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참패한 유재학 감독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유 감독은 중요한 경기에서 진 다음엔 엄청난 상처를 받는다. SK 빅스를 이끌던 2001~2002시즌 LG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참패한 뒤에는 홀로 폭음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눈물이나 흘리고 잊어버리는 사나이에 불과했다면 정규리그 2연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재학이라는 인간은 시련 속에서 더욱 강해졌다. 또한 그에게는 전설의 골퍼 아널드 파머에게 ‘아니의 군대(Arnie’s Army)’가 있듯 영원할 것 같은 골수팬들이 있다. 그들은 유재학이 쓰러질 때마다 일어설 수밖에 없도록 끝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추억을 향한 박수일지 모른다. 그 추억엔 ‘유재학의 군대’가 영원히 잊지 못할 몇 개의 명장면이 담겨 있다. 1982년 9월 24일, 고려대와의 정기전에서 새내기 가드 유재학은 79-80으로 뒤진 경기 종료 7초 전 역전 결승골을 넣는다. 기아 소속이던 87년 1월 31일 현대전자와의 경기에서는 한 경기 20개의 어시스트를 성공시킨다.

그러나 선수 유재학은 단명했다. 기아에서 딱 세 시즌만 뛰고 무릎 부상을 당해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은퇴했다. 경기당 어시스트 7.14개(통산 1위)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채.

흔히 유재학 감독을 ‘선수로서는 천재형, 감독으로서는 대기만성형’이라고 표현한다. 정확한 말일까.

그가 대우(현재 전자랜드)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때 나이는 33세였다. 성적 그래프를 보면 대기만성임에 틀림없다. 정규리그에서나마 헹가래를 쳐본 것은 지난 시즌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재능이라는 면에서 그는 프로 코치가 되기 훨씬 전부터 자질을 인정받아온 사람이다.

지도자로서 유재학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연세대 코치 시절이다. 최희암 감독이 이상민ㆍ서장훈ㆍ문경은ㆍ우지원 등을 이끌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다. 연세대의 경기가 대부분 중계됐고, 작전 시간에는 방송국 카메라가 연세대 벤치에 집중됐다. 당시 SBS에서 농구 해설을 한 한창도 전 이화여대 감독은 사석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최 감독이 얘기 끝내고 선수들이 자리에서 일어설 때 재학이가 한마디 하는 걸 꼭 들어야 해. 그게 진짜거든.”

감독 유재학을 대기만성으로 만든 것은 유 감독 자신이다. 천재 가드였던 그는 마음에 드는 선수를 만나지 못했다. 눈에 차는 선수가 없었고, 이 멤버로는 절대 우승할 수 없다는 좌절감도 자주 느꼈다. 그러나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를 제패하면서 그의 농구 철학이 바뀌었다. 평범한 선수였던 양동근이 두 시즌 연속 최우수선수가 됐다. 유 감독은 재목을 다듬어 완성하는 희열에 맛들였다.

이제 많은 농구팬들은 80년대의 영웅 유 감독이 플레이오프를 제패하기만 하면 열광할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유재학의 군대’는 박수 칠 준비를 끝냈다. “우승할 때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플레이오프 4강전은 7일 시작됐다. 상대는 오리온스. 모비스는 95-80으로 승리했다. 플레이오프 통산 승률 30.4%(7승 16패)에 불과한 유 감독으로서는 좋은 출발이다. 그러나 결승에 가려면 2승이 더 필요하다. 오리온스 사령탑은 정규리그 두 차례, 플레이오프를 한 차례 제패한 김진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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