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영이 뭐기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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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0면

문화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에 참석한 CEO들이 가면 무도회 행사를 갖고 있다. 신동연 기자 

#부산 누리마루 여행

CEO들의 굿판

양귀애 대한전선 고문은 차별화 강박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장기자랑 시간에 그는 “많은 사람이 노래를 하고 춤도 멋지게 췄는데 내가 아무리 잘한다 해도 돋보이겠어요”라며 “놀 때도 차별화를 해야 하는데…”라고 했다.

양 고문은 잠시 뒤 홀 한쪽에 있는 피아노로 다가가 ‘에델바이스’ 등 두 곡을 프로급으로 연주해 박수를 받았다. 고(故) 설원량 회장의 미망인인 양 고문은 3년 전 남편이 작고하자 대한전선을 이어받았다. “주부였기 때문에 기업을 잘 모르지만 전문경영인들이 회사를 잘 꾸려나갈 수 있도록 코치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도 뭐를 알아야 하잖아요. 문화체험뿐 아니라 이것저것을 배우러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죠.”

2월 23일 정휘동 청호그룹 회장 등 30여 명의 CEO는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장소였던 누리마루로 여행을 떠났다. 참석자들은 누리마루를 둘러본 뒤 문화커뮤니케이션 입학식과 자기소개, 여흥시간을 보냈다. 조별로 나뉘어 장기자랑도 했다.

양 고문은 이날 여성 CEO 좌장으로서 가는 곳마다 분위기를 압도했다. 건배사를 주문받자 ‘당신 멋져(당당하고, 신나고, 멋지게, 져준다)’를 외치자고 했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다 보니 우리는 멋지게 져주는 법을 모르더라”고 강조했다.

이날 사회를 본 최성원 한국산업레크레이션연구소 소장은 장기자랑이 끝난 뒤 그랑프리 상금으로 1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는 100원짜리 동전 한 개와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줬다. 최 소장은 “보통 사람은 이것을 1만100원으로 보지만 나는 100만원으로 본다”며 “CEO는 머리가 굳어 있으면 안 되고 항상 유연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뒤질세라 정휘동 청호그룹 회장이 팁을 5000만원 주겠다고 나섰다. 1만원권과 5000원권을 1장씩 주는 것이다.

하성호 한국문화커뮤니케이션 이사장은 참석자에게 자주색 행커치프를 나눠주면서 “쑥스럽고 어색하지만 격식을 갖추는 법도 배워야 하니 착용하시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손바닥만 한 수건 한 장이 CEO의 격식과 품격을 얼마나 높여주는지 여러분은 오늘 체험했을 것”이라며 “먹고사는 것을 빼고는 다 문화”라고 정의했다.

#매주 화요일 이색 체험

서울 프라자호텔에서는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30여 명의 CEO들이 모여 이색 체험을 한다.

정성모 마술사를 초대해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그는 “마술은 초능력이 아니라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이라며 “속임수를 배우지 말고 그 속에 담긴 철학을 배우라”고 주문했다. 윤호성 현주건설 사장은 “좀 서먹한 자리에서 넘버카드 마술(상대의 마음속 숫자 알아내기)을 써먹으면 대화가 순조로울 것 같다”고 했다.

김순응 K-옥션 대표는 ‘미술,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제목의 강연에서 “15억원어치 미술품을 사달라는 사람도 있었다”며 “안목을 먼저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진작가인 김아타는 창원대 기계공학과를 나와서 그랬는지 한국에서는 비주류 작품이라며 푸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해외에서 인정받자 너도나도 그의 작품을 사겠다고 법석이다. CEO는 미술 작품을 보듯 인재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조세현 작가의 사진찍기 강의와 누드모델 촬영 실습을 했다. 이 밖에 가면무도회, B-Boy와 춤추기 등도 배웠다.

#기업인이 왜 문화인가

행사가 열릴 때마다 기자는 “촌각을 아껴 쓰는 CEO가 왜 이런 모임에 나오느냐”고 물었다.

김천식 현대정밀산업 회장은 제2의 도약을 위해 문화를 공부한다고 했다.
“기업 경영자는 끊임없이 이윤을 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부도를 내는 죄인이 된다. 처음에는 돈의 노예가 되고, 나중에는 일의 노예가 된다.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가니 뒤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재도약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었다.”

문화체험을 하면서 뭘 배웠느냐고 물었다.

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은 “넉넉한 마음과 정신적인 유연성을 많이 배웠다”고 했다.

윤영달 크라운ㆍ해태제과 회장은 “과자가 아토피를 유발한다는 이야기로 회사가 많이 어려웠다”며 “좋은 과자를 만들면 소비자가 이해할 줄 알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아이에게 과자를 먹이느니 담배를 먹이겠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며 “신뢰를 먼저 쌓자는 해법을 찾았다”고 했다. 소비자와 함께 아름다움(美)과 즐거움(Fun)을 찾자는 것이다. 그는 이를 ‘아트마케팅’이라고 했다.

일부 곱지 않은 시선은 없냐고 물었다.

박인성 서인기업 사장은 “내가 여기 나오는 것에 대해 직원들과 솔직히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썩 좋지 않아서 한때 불편했다”고 말했다.  

창조경영이란?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으로 망해가던 애플사를 살렸다. 기술개발에 힘을 쏟는 정책에서는 나올 수 없는 작은 발상의 전환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춘은 이와 관련해 ‘굿바이 잭 웰치’라고까지 했다. 잭 웰치의 ‘효율’ 대신 스티브 잡스의 ‘창조’를 높이 평가했다. 창조경영이란 한마디로 새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작은 상상력이 기술과 융합됐을때 혁신적인 상품이 나올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많은 CEO들이 강조해 왔지만 이를 경영 차원에서 선언한 사람은 이건희 회장이 처음이라는 것이 창조경영아카데미 김영한 대표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고, 이는 직원교육에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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