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슈] 일본, 글로벌 M&A '사냥터'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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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일본은 1일부터 '3각 합병' 제도를 시행한다. 3각 합병이란 외국 기업이 일본에 세운 자회사를 통해 본사 주식으로 일본 기업을 사들일 수 있는 제도다. 외국 모기업의 경우 발행주식수가 많고, 일본 기업에 비해 시가총액이 수배에서 수십배에 달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때문에 일부 자사주를 매수 대상 일본 기업의 주주들에게 건네는 것만으로 인수가 가능하다. 보다 쉽게 일본 기업을 매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1967년부터 3각 합병을 인정하고 있으나 유럽연합(EU)은 인정치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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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는 일본 기업들=최근 프랑스의 식품업체 다농은 3각 합병의 시행에 맞춰 일본에 있는 현지법인을 '완전 자회사' 형태로 전환했다. 그러자 일본 식품업계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 업체를 사들이기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일본의 야쿠르트 지분을 20%까지 사들인 뒤 '휴전'에 합의한 다농이 3각 합병을 충분히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다농의 시가총액은 약 5조 엔인 데 비해 야쿠르트는 5600억 엔에 불과하다"며 "자사주를 조금 추가 발행하는 것만으로 야쿠르트를 삼킬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세계 1위인 미탈스틸이 2위 업체인 아르셀로를 인수하는 등 업계 재편 바람이 거센 철강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본 업계 1위인 신일본제철을 비롯한 일본 철강업체들은 속속 '사전경고제'를 도입하고 있다. 발행 주식의 20% 이상을 사들이는 투자자에게 그 목적 등의 설명을 요구한 뒤 그 내용을 사외이사들로 구성되는 특별위원회가 검토, '적대적'으로 판단되는 경우 신주예약권을 할당하는 제도다. 신주예약권을 할당하면 발행주식수가 크게 늘어나 외부세력이 매수에 나서기 힘들어진다. 이 밖에 지난달 말 현재 229개의 상장기업들이 자체 '매수 방어책'을 발표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3각 합병의 1차 표적은 현금이나 부동산이 풍부한 반면 상대적으로 주가가 낮은 기업, 혹은 시가총액은 적지만 독자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 경제산업성은 최근 3각 합병으로 인한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16년 만에 외국자본의 투자규제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법 개정을 발표하며 재계를 다독이고 있다. 하지만 "먹이가 될 양 한마리 당 노리는 '파란 눈'의 늑대는 다섯마리" 라는 '괴담'이 재계에 빠르게 번지고 있다.

◆'주주 우선 경영'의 계기 될 수도=장기적으로 보면 3각 합병의 실시로 주주를 우선시하는 기업 풍토가 정착할 것이란 긍정적 분석도 있다. 실제 신일본제철은 최근 약 41만 명에 달하는 개인주주 전원에게 '회사의 어떤 정보를 알고 싶으십니까' 등의 설문이 담긴 편지를 보내고, 다섯 곳의 제철소에 '주주 견학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주주 마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이다. 또 다케다(武田) 약품공업이 106엔에서 120엔으로 주당 배당을 늘리는 등 외국자본의 '대공습'이 예상되는 제약업체들도 적극적인 주주 우대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노무라 증권의 마치다 에이이치(町田英一) 연구원은 "앞으로는 시장으로부터 평가받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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