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공영성,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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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27면

공영방송의 주인은 시청자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세금과 별도로 시청료를 걷는다. 정부회계로부터 재정적으로 방송을 독립시키기 위한 제도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 시청자가 공영방송의 주인이었던 적이 있는가.

공영방송을 출범시킨 1980년대 초 전두환 정부는 KBS와 MBC를 모두 관영보다도 더한 대통령 직할매체로 운영했다. 이 주장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전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두 방송의 사장이 계속해 청와대 대변인을 했던 사람으로 채워진 사실이다. 당시에도 독립을 표방하는 방송위원회는 있었고, KBS 이사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BBC 경우처럼 정부의 입김을 막아주는 시청자 대표는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새로운 방송법이 만들어지고, 공영적 방송문화가 자리 잡는가 했다. 그러나 요즘 청와대와 KBS 직원들이 주고받는 가시 돋친 대화를 보면, 제대로 된 공영방송의 정착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갈등의 발단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정부는 KBS가 준조세인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니 이 법의 규제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안이 제안되자 KBS는 ‘미디어 포커스’ 프로그램을 통해 KBS의 예산과 결산에 관한 사항을 정부가 통제하면 방송의 독립성이 사라지니, KBS는 규제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대통령과 기획예산처 장관, 청와대 비서관 등이 나서 KBS를 공격했다. 이 법의 규제대상이 되는 것과 방송의 독립은 관계가 없다는 요지였다. 자사의 주장을 펴기 위해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은 전파남용 행위라는 비판도 곁들였다.

문제는 정부와 방송사 직원들의 갈등이 정작 공영방송의 주인인 시청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점이다. 정부나 KBS 직원들은 서로 자신이 시청자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BBC의 예를 보면 시청자의 유일한 대표기관은 BBC이사회다. 영국에서는 공영방송 이사회가 정부의 압력도 막고 사원들의 이기적 움직임도 견제한다는 뜻이다.

결국 한국에서 정부와 KBS 직원들이 직접 충돌하는 이유는 시청자를 대표해 양자를 견제해야 하는 방송위원회와 이사회가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원인은 공영방송을 감독하는 방송위원회와 방송사 이사회가 정파적 배분으로 구성되는 법률구조에 있다. 이 체제에서는 공영방송을 정부와 여당의 영향권에서 떼어놓을 방법이 없다. 따라서 정부로부터의 독립에서 나아가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공영방송이 되려면 재정독립 원칙의 확립과 함께 이사회 구성방식의 탈정치화를 위한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

방송사 직원이 공영방송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부작용도 제도적 견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는 계속 확장하는 시청률 지상주의를 제어할 수 없다. 한때 주 시청 시간대에 배치됐던 시사 프로그램들은 이제 대부분 12시 부근 심야로 밀려났다. 그 시간이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으로 채워졌음은 물론이다. 미국 CBS는 상업방송이지만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 성가가 높은 ‘60분(sixty minutes)’을 주목도가 가장 높은 일요일 저녁 7시에 방송한다. 영국 방송들은 사회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들을 저녁 8시에서 10시대에 편성한다. 방송의 정체성은 결국 프로그램 내용과 편성으로 정해진다. 그런 점에서 한국 공영방송의 프로그램 현실은 누구를 위한 방송인가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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