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공원 만드는 사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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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18면

구본무 LG 회장은 3년 전 사장단 회식 자리에 이끼 연구 전문가를 초대했다. 구 회장은 이 자리에서 다소 의아해하는 참석자들에게 “국내 이끼 보전과 증식이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FOCUS 창립 60주년 조용히 지낸 구본무LG회장

그간 새 박사로 알려진 구 회장이 3년째 이끼 사업에 공을 들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구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LG상록재단을 통해 비공개로 3년째 이끼를 연구했다. 그는 또 건설 중인 곤지암 리조트 수목원에 이끼공원도 만들도록 했다.

구 회장이 이끼 사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당시 구 회장은 그룹 내 생태전문가를 일본 홋카이도로 보냈다. 화산지대의 용암이 흘러내린 곳에서 서식하는 이끼를 조사해 오라고 했다. 그는 일본의 용암지대에 이끼군락이 있다는 얘기를 지인에게서 전해 듣고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라고 했다. 이어 미국ㆍ캐나다의 이끼 서식지도 살펴보도록 했다. 얼마 뒤 연구원들로부터 답사보고를 받은 구 회장은 ‘이끼 서식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국내 기후환경에서도 증식 등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싹틔웠다. 국내 어디에서도 이끼가 잘 자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도록 했다.

구 회장은 이후 LG상록재단을 통해 체계적인 이끼증식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했다. 2004년에는 일본 생태식물학회장인 데구치 히로노리(出口博則) 히로시마대 교수를 초빙해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 또 최두문 전 공주대 교수가 1980년에 펴낸 뒤 수정 보완이 없었던 이끼도감을 개정하는 데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구 회장과 의견을 나눈 한 전문가는 “그는 이끼에 한껏 심취해 있었다”며 “지구상 최초의 식물인 이끼가 자연생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구 회장은 이끼연구 진행상황을 보고받을 때마다 “우리 산도 푸른 이끼로 뒤덮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국내 최초로 이끼공원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경기도 광주 곤지암CC 인근에 조성 중인 곤지암 리조트에 5만 평 규모의 수목원을 짓기로 하고 그 안에 대단위 이끼공원을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것. 그는 이끼와 반딧불이 테마공원 아이디어를 직접 냈다고 한다. 구 회장은 “이곳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 태초의 자연생태를 마음껏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구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생태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그는 새를 좋아해 오랜 기간 탐조활동을 했다.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도 새를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이 있을 정도다. 그 성과로 2000년에는 『한국의 새』라는 조류도감을 직접 출간하기도 했다. 당시 구 회장은 “새를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값진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새 박사로 알려진 그가 갑자기 이끼에 심취한 까닭은 뭘까.

그는 멸종위기에 처한 새들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한 생태학자는 “구 회장은 새가 사라지는 것은 숲이 사라지기 때문이며 숲의 근원은 이끼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김영근 한국자생식물협회 회장은 “구 회장은 이끼의 청초함과 태초의 신비로움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의 이끼사랑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최근의 경영행보와도 관련이 있다.

日 이끼학자 초청, 3년째 심취

국내는 이끼가 잘 크지 않는 환경이다. 원래 이끼는 연중 일정한 습도가 유지돼야 하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생태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나마 자생이끼 연구가 전무한 실정이다. 국내에는 멸종위기에 빠진 이끼 종류도 많다. 심지어 분류작업이 이뤄지기도 전에 멸종하는 일이 있다는 것. 구 회장의 이끼연구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학계는 물론 조경업계에서도 어떤 성과가 나올지 적잖은 관심이다.

현재 구 회장의 이끼연구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년 전 데구치 교수와 국내 연구진에 연구 용역을 맡긴 결과 국내 자생이끼가 과거에 비해 종의 수뿐만 아니라 자생지ㆍ수량도 현저히 줄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국내에 서식하는 630여 종의 자생이끼가 있고, 이 중 10여 종은 증식이 가능한 것으로 연구됐다.

그러나 아직도 표본연구 단계다. 자연상태인 곤지암 리조트에서도 이끼 증식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끼 성장속도는 매우 더뎌 연간 0.5㎝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곤지암 리조트는 내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하지만 수목원 개방시기가 미정인 것도 이끼정원 조성의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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