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문 중심에 ‘關係學’이 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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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07면

지난달 29일 서울대에서 열린 미래 학문ㆍ대학 콜로키엄에서 참석자들이 ‘21세기 지식체계’란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맨 오른쪽과 그 옆이 공동발제를 한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신인섭 기자 

발제문 요약

중앙 SUNDAY와 함께하는 미래 학문·대학 콜로키엄

21세기에는 인간이 비생물학적 존재가 되면서 지능이 지금의 1조 배가 된다는 주장이 있다. 뇌세포를 모두 칩으로 바꾸면 가능할지 모른다. 인간의 형이상학적 존재 의미와 그 환경이 크게 변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에 고등교육의 존재 가치와 기능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삶과 지식의 습득과 인간의 완성에서 필수적인 기본 요소로 상상력과 전체를 보는 혜안, 서로 다른 요소들을 묶는 관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심미안(디지그노) 등을 꼽을 수 있다. 미래 학문은 ‘관계의 과학’, 경계를 넘는 ‘융합의 과학’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대학의 분과 학문과 단과 대학들이 존속할지 의문이 앞선다. 학문이 이제 과거의 분화를 멈추고 통합ㆍ융합ㆍ통섭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학의 학문 분과가 너무 세분돼 횡적 교류 없이 유아독존하는 것은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고, 현실세계에 대한 기여도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에는 문리대학이 있었다. 희랍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유 학예를 가르쳤다. 그런데 이를 쪼개 인문ㆍ사회ㆍ자연 대학을 만들었다. 인문학의 위기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학문의 벽을 쌓을 대로 쌓았으니 누가 서로를 존중하며 활용하겠는가. 지금 대학의 학문 분과들은 서로 교류하고 교차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21세기 지식체계의 본질을 ‘융합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1세기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도 융합과학이다. 생각하는 로봇은 생명과학+인지과학+기계공학의 융합 산물이고, 휴대전화 인공지능칩은 나노기술+인지과학+반도체기술의 합작품이다.

융합학문의 토대가 되는 나노기술은 그 자체가 다학제(多學制)적이다. 나노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물리학자가 화학식을 외워야 하고, 기계공학자가 박테리아를 관찰해야 하며, 화학도가 전자공학을 연마해야 하고, 재료과학도는 양자역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학제성은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문다. 2020년이나 2030년이 되면 물리ㆍ화학ㆍ생물ㆍ전자ㆍ재료ㆍ기계 등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무너지고, 나노기술이라는 한 분야로 대통합을 이룰 것이다.

미래의 학문은 관계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각 학문 간의 관계를 엮는 관계학은 RT(Relation Technology)라고 부를 수 있다. 융합의 시대를 맞아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앞으로 필요한 인물은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다.

미래의 학문으로 예견되는 것 중 하나가 인지과학의 이름으로 학문을 하나로 묶거나, 큰 학문을 보는 이른바 통섭(consilience)이다. 융합의 맥락과 어긋나지 않는다. 통섭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통합ㆍ융합을 지향하는 새로운 학문의 입장이다. 큰 줄기를 잡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넘나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도 ‘생존의 뇌’나 ‘감정의 뇌’ ‘사고의 뇌’를 넘어 ‘설명의 뇌’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명이야말로 인간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경계를 치고 장벽을 높이기만 한 기존의 과학적 태도는 바꿔도 크게 바꿔야 할 것이다.

이제 21세기 지식의 나무(그래픽)를 그려보자. 기본 축을 분과 과학과 종합 과학(또는 인성학과 자연학)으로 나누고, 그 뿌리를 형이상학으로 한다. 철학은 기초 학문이 아닌 종합 학문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종합의 기초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결국 21세기의 학문은 분과 과학과 종합 과학(또는 인성학과 자연학)이 융합ㆍ통섭을 이루는 것을 기본 골격으로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감안하고 신인류 등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모든 것을 이어가고 연결하는 관계학이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끝으로 인간이 존립하는 지구, 그 지구의 우주, 그것만이 아니라 우주 밖까지 인간의 인식의 지도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나열한 학문들은 예시적일 뿐 망라적이지 않다는 것도 밝힌다. 정리=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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