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箱의 창작 산실 집터 기념관으로 부활 첫 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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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02면

이상(李箱ㆍ1910~37)이 쓴 시 ‘오감도(烏瞰圖)’는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읽어도 참 난감이다. “13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適當)하오.) / 제(第)1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2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제(第)3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로 이어지는 무섬증의 정체는 시공을 거뜬히 뛰어넘는다. 시인ㆍ소설가ㆍ건축가로 산 27년 짧은 삶의 흔적은 100여 편 문학으로 남았지만 그 몸을 부렸던 공간은 자칫 사라질 뻔했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 그가 스물네 살까지 살면서 시 ‘오감도’와 소설 ‘날개’를 쓴 큰아버지 집터(사진)가 머지않아 기념관으로 되살아난다. 이상의 70주기를 맞은 해에 첫 삽을 뜨는 것이다.

‘이상 기념관’ 사업에는 여러 사람이 힘을 보탰다. 시작은 건축가 김원(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씨. 김 대표는 근대문화유산인 이 집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2003년 김수근문화재단과 함께 사들여 등록문화재로 지정 받았다. 두 번째 걸음은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뗐다.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일을 꾸준히 해온 ‘아름지기’가 ‘이상 기념관’ 건립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돈이었다. 여기에 세 번째 아름다운 손이 나타났다. 5일 ‘마크 오브 리스펙트(Mark of Respect)’ 상을 받은 문학평론가 이어령(74)씨가 상금을 ‘아름지기’ 후원금으로 건넸다.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은 진로발렌타인스가 문화예술계에서 빼어난 업적을 남긴 이에게 주는 상. 박찬욱 감독에 이어 두 번째 수상자가 된 이어령씨는 ‘이상 기념관’ 사업 등 ‘아름지기’가 벌이고 있는 문화유산 껴안기에 힘을 주려 상금 전액을 쾌척했다. 70주기를 맞은 이상은 이제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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