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경쟁이 ‘보스’의 독단 부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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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15면

대선 캠프는 권력의 출발점이다. 동시에 권불오년(權不五年)의 무상함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대선 캠프에서 벌어졌던 일은 거의 비밀이 없었다. 캠프 내 역학 관계, 갈등, 도덕성의 측면에서 싹텄던 문제로 승자의 정권은 5년 내내 부담을 져야 했다.

캠프 통해 효율적 선거운동 가능하지만 승리 지상주의가 극한대결, 반칙 부추길 수도

‘새 정치’를 깃발로 출발했던 노무현 정부의 어려움은 최측근인 안희정씨가 2002년 대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됐다. “내 사전에 레임덕은 없다”고 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무너뜨렸던 아들 현철씨의 국정 개입과 비선 인맥 논란도 캠프 때부터 배태됐다. 임기 말 각종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김기섭 전 안기부 기조실장을 현철씨가 캠프에 영입한 것은 “신라호텔 상무를 하며 YS에게 깍듯이 대해 캠프의 의전 담당자로 적격이었다”는 논리였다.

승리의 환호도 잠시, 권력 실세로 등장한 참모들의 과거와 문제점은 적잖은 후유증을 낳아왔다. 2004년 조지 W 부시 후보의 뉴멕시코주 캠프가 승리의 뉴스를 접한 뒤 열광하고 있다.AP특약 

선거 전략가로 알려진 전병민 씨는 노태우 대통령 후보로 하여금 와이셔츠 바람에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니게 해 ‘샐러리맨’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를 높게 평가한 YS와 현철씨가 그를 스카우트했다. 하지만 전씨는 청와대 정책수석비서관에 내정되면서 장인이 송진우 암살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사실상 YS 캠프의 최고 전략가였던 현철씨가 YS 정부 몰락의 주역이 된 사실은 아이러니다.

김대중(DJ) 정권 후반기 이권 개입이 폭로되면서 나라를 흔들었던 최규선씨도 1997년 대선 전 DJ의 대외담당보좌역으로 캠프를 드나들었다. 조지 소로스 미국 퀀텀펀드회장과 알 왈리드 사우디 왕자, 가수 마이클 잭슨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환란 해결의 묘수를 찾던 캠프에 신기루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결과는 ‘최규선 게이트’라는 재앙이었다. “최씨가 비선이 아니라 청와대의 공식 직책에서 활동했다면 DJ 정부는 3년도 안돼 붕괴했을 것”이라는 게 DJ 사람들의 토로다.

대선 캠프는 당장 승리의 아이디어를 갈구한다. 자체 검증은 한가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캠프가 미래 권력의 출발점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YS 집권 4년 후 비서 출신인 장학로 대통령 부속실장이 37억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됐다. 당시 여권에서는 “청와대에 가기 전 공무원 연수교육이라도 받았으면 그 정도까지는 안 갔을 것”이라고 했다. 캠프의 관행과 공직 사이의 간격은 너무 컸다.

단지 충성심 때문에, 승리에 대한 조급함으로 분별없이 사람을 모아놓는 캠프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전문성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캠프 문화를 만드는 능력도 대선주자가 평가받아야 할 리더십이다. 미국의 경우 전략·모금·네거티브 등 67개 분야별로 정치 자문 전문가들이 활약한다. 그들은 투명한 이력과 선거 성적표를 근거로 고객과 계약을 한다.

정치 선진국의 길은 아직 멀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참모들의 삶의 궤적, 이념과 성향 등을 각 캠프가 최대한 유권자에게 공개해 선택을 도와야 한다. 집권 후 국정 운영 부담을 최소화하는 지름길은 이런 캠프 매니페스토(공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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