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心’ 읽는 4人의 그림자 참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호 07면

지난달 11일 인천공항에서 안봉근 수행부장(가운데)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왼쪽)를 반기는 시민들을 주시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담당하게 된 기자들이 “꼭 알아야 할 사람”으로 듣는 이름은 ‘안봉근’이다. 박 전 대표의 경호까지 책임지는 수행부장이다. 박 전 대표의 일과는 아침에 집으로 출근하는 그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해 저녁에 자택에서 그의 퇴근 인사를 받는 것으로 끝난다. 박 전 대표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그가 받으며 박 전 대표가 통화를 원할 때도 안 부장을 거친다. 바쁜 일정 틈틈이 안 부장과 뭔가를 긴밀하게 상의하는 박 전 대표의 모습은 흔히 목격된다.

박 전 대표 곁 10년 지킨 안봉근·이재만·이춘상·정호성

그러나 안 부장은 기자들에겐 별 도움이 안 된다. 입이 자물통이다. 어떤 걸 물어도 “글쎄요,잘 모르는데요”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박 전 대표의 곁엔 안 부장 같은 ‘그림자 참모’가 세 명 더 있다. 이춘상·이재만 보좌관과 정호성 비서관이다. 박 전 대표가 정치에 입문하던 1998∼99년부터 10년 가까이 줄곧 옆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다. 이 네 명은 지금도 캠프의 핵심 역할을 조용히 수행하고 있다.

이정현 공보특보는 “박 전 대표의 마음을 가장 잘 읽고 의중을 정확히 전달해 캠프가 돌아가게 하는 소수 정예”라고 표현한다.손사래 치는 이들을 붙들고 억지로 몇마디 들었다.

안 부장은 박 전 대표의 ‘개국공신’이다. 침묵 속에서 지내던 박 전 대표가 98년 4·2 재·보선에 출마하며 정치권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도왔다. 박 전 대표가 연고가 없는 대구 달성에서 거물인 국민회의 엄삼탁 후보에게 도전장을 냈을 때 바닥을 훑고 다니며 승리에 기여했다. 대기업 과장 출신인 그를 박 전 대표는 아직도 ‘안 과장’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가장 끔찍한 기억은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전 대표가 피습 당했을 때다. “‘차라리 내가 다쳤더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5년간 끊었던 담배도 그때 다시 피웠다.

힘들다가도 박 전 대표의 “힘들었죠”라는 잔정 섞인 한마디에 힘이 난다고 했다. 그는 “대표님(박 전 대표)은 집에 들어갈 때 인사를 드리면 똑바른 자세로 서서 함께 고개를 숙인다”며 “‘설마 그럴까’ 싶겠지만 정말로 매일 그런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컴퓨터 전원을 켠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사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사이버 공간에 들어선다. ‘네티즌 박근혜’를 돕는 이가 이춘상 보좌관이다. 공학박사인 그는 강원관광대학(옛 태성전문대) 교수이던 98년 면접시험을 거쳐 경쟁을 뚫고 보좌관이 됐다. 그때 박 전 대표는 “이공계의 어려운 점이 무엇이며 사기를 높이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하냐”는 질문을 했다. ‘의원 박근혜’의 의정활동 지원도 그의 몫이다. 박 전 대표는 NGO가 주는 ‘국감 우수의원상’의 단골 수상자다.

보좌진이 잘못할 땐 박 전 대표도 표를 낸다. 가장 심한 표현은 “다음엔 잘 해주세요”다. 절대로 반말은 안 한다.

정호성 비서관은 큰 실수를 했던 적이 있다. 2000년 겨울 여의도에 있던 한나라당사 회전문이 얼어서인지 잘 안 열렸다. 박 전 대표가 미는데 정 비서관이 힘을 보태다 갑자기 문이 확 돌아갔다. 박 전 대표가 중심을 잃고 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박 전 대표는 일주일간 집에만 머물러야 할 정도로 이마에 부상을 입었다. 당황한 정 비서관에게 박 전 대표는 웃음을 보였을 뿐이다. 98년 교수 추천으로 보좌진에 합류한 정 비서관은 박 전 대표의 연설문을 ‘박근혜식’으로 다듬는 역할을 한다. 상대방을 자극적으로 비방하는 표현이 ‘삭제 대상 1호’다. 그는 “대표님은 개인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문구를 싫어한다”며 “평소 말 실수를 하지 않는 이유도 듣는 이의 입장을 늘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영학 박사로 99년에 합류한 이재만 보좌관은 캠프의 정책 전반을 점검한다. 그는 외부 전문가의 자문이 박 전 대표의 철학과 일치하는지 살펴본다.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박 전 대표가 빼곡히 메모한 내용을 전달하는 대상이 이 보좌관이다. 때로는 차량으로 이동 중에도 이 보좌관에게 전화해 수첩에 적은 내용을 연구하도록 지시한다. 이 보좌관은 “수첩에 기록이 남아 있어 박 전 대표의 점검을 피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보좌진에겐 가위 ‘공포의 수첩’이다. 정책 대안을 찾을 때 해당 항목뿐 아니라 인접 분야의 영향까지 요구하는 모습에서 “부친과 청와대에서 국가정책을 논하던 스케일을 느낀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내가 국회에 들어온 후에 부총재 선거, 당 대표 선거를 비롯해 힘든 일이 많았는데 우리 보좌진이 한마음이 돼서 어렵다는 얘기 한마디 없이 열심히 도와줬다”며 “굉장히 고맙고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대통령 후보 경선까지 하게 되니…”라며 미안함을 비쳤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