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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다구치를 기다리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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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14면

다구치 소(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사진)는 서른여덟 살의 외야수다. 그의 이름을 듣고 퍼뜩 얼굴이나 등번호가 떠오른다면 대단한 야구팬이다.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 더 많은 다구치를 기다리며

그가 경기에 출전할 때는 대부분 이름 앞에 ‘대’라는 글자가 붙는다. 큰 대(大)가 아니라 누굴 대신한다는 의미의 ‘대(代)’다. 그는 대타, 대주자, 대수비 전문선수다. 지난해 성적도 타율 0.266에 2홈런 31타점뿐이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듣고 마쓰이(뉴욕 양키스), 특히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보다 낯설어하는 게 당연하다.

이치로는 일본 출신 메이저리거의 아이콘이다. 자신도 맨 앞에 서고 싶어 한다. 지난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이치로의 그런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일본 선수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을 때는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의 승부욕을 내보였다.

다구치와 이치로는 팀 동료였다. 1991년 두 선수가 나란히 퍼시픽리그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유니폼을 입었을 때 다구치(드래프트 1순위)는 이치로(4순위)보다 더 유망한 선수였다. 둘은 3년 뒤 나란히 주전 외야수가 됐다. 그리고 1995년부터 팀 이름대로 ‘푸른 물결’을 일으켰다. 그들은 95, 96년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96년에는 재팬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이치로가 일본에서 7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하는 동안 다구치는 한 번도 3할을 때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튼실한 수비를 앞세워 골든 글러브를 놓치지 않았다. 이치로가 공격의 대표 격이었다면 다구치는 수비의 대표 격이었다.

2001년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이듬해 다구치가 태평양을 건넜다. 이치로가 3년간 1400만 달러의 화려한 조건이었던 반면 다구치는 3년 300만 달러가 전부였다. 다구치는 첫해 마이너리그 더블A에서 뛰었고 2003년에도 대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그는 2005년에야 안정된 빅 리거가 됐다. 2005년 그의 연봉은 55만 달러. 어림잡아 이치로의 20분의 1이었다. 연봉은 적었지만 다구치는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됐다. 대타, 대수비, 대주자였지만 한결같이 진지했고 언제든 제 몫을 해주었다. 그는 남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그래서 그 공백을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스타일이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은 다구치 야구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는 뉴욕 메츠와의 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 9회 동점 상황에서 결승홈런을 때렸다. 그리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 7회 무사 2루에서 안타나 홈런보다 값진 번트를 성공시켰다. 그 번트는 상대투수의 악송구를 불렀고 역전승의 불씨였다.

그리고 5차전에서 카디널스가 월드챔피언이 되는 순간, 그는 외야의 한자리를 당당히 지켰다. 신인왕, MVP, 올스타를 놓치지 않았던 이치로가 서보지 못한 자리였다. 이치로는 수퍼스타지만 챔피언이 되지 못했고 다구치는 대타, 대수비로 출발했지만 챔피언이 됐다.

이치로와 다구치 중 누가 낫다거나 누가 옳다는 말은 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인물들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려 할 때 선뜻 자신을 뒤로 물리고 남의 빈자리를 채워주려 하는 다구치 같은 인물이 많아야 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네이버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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