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과 디자인을 조화시킨, 그 센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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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31면

돌이켜보니 의자에 앉아 뭉그적거리며 살았다. 돌아다닌 시간을 제외하면 40대의 10년을 컴퓨터 자판과 씨름하며 보낸 셈이다. 혼자만의 삶(being alone)이 주는 행복과 고독, 절망과 인내의 시간을 함께한 의자는 나의 친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편안한 의자를 탐해도 용서받아 마땅하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지오제토 주지아로의 의자 ‘콘테사(Contessa)’

진정 마음에 드는 의자가 있다면 그 값이 얼마든 살 의향이 있다. 틈틈이 인터넷을 뒤지고 서울 논현동 일대의 가구점을 하릴없이 배회했던 속내다. 물건도 인연이 있게 마련이다. 일본 도쿄 아카사카를 지나다 쇼윈도에 진열된 멋진 자태의 ‘콘테사(Contessa)’가 눈에 뜨였다. 순간 난 ‘바로 이거야!’를 연발했다. 매장 안으로 불쑥 들어가 진열품에 앉아보는 나의 무례를 점원도 제지하지 못했다. 엉덩이와 허리에 감기듯이 전달되는 의자의 감촉은 뭔가 달랐다.

‘콘테사’는 이탈리아의 명산업디자이너 지오제토 주지아로(Giogetto Jujiaro)의 작품이었다. 국산 자동차 몇 기종을 디자인해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좋아하는 구형 카메라 니콘 F3도 그의 작품이다. 기능과 디자인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재주는 그의 명성을 뒷받침한다. ‘콘테사’의 실물을 보고 “역시!”를 연발하며 맹신적 신뢰를 보낸 것도 무리가 아니다.

허기져 보채는 아이처럼 난 조급했다. 당장 살 듯한 기세로 점원에게 가격과 한국까지의 배송 여부를 집요하게 물었다. 배송료까지 포함한 ‘콘테사’의 값은 만만치 않았다. 포기하고 매장을 나오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이후 ‘콘테사’가 눈에 어른거려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멋진 사무용 의자가 있다니….

반드시 손에 넣을 것이란 각오를 더할 만큼 유혹은 대단했다. 간절한 소망은 현실로 이루어진다. 좋은 물건을 골라낼 줄 아는 수입사의 안목으로 ‘콘테사’는 국내에 들어와 있었다. 당장 리바트 매장으로 달려가 의자를 사들였을 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지 않았다.

기능을 무시한 디자인은 반쪽의 성과다. 반대로 디자인을 무시한 기능이란 격조가 없다. ‘콘테사’는 기능과 디자인의 유기적 연결이 완벽한 스켈턴 타입의 사무용 의자다. 형태는 인간공학과 의자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유기적 선의 흐름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멋도 있고 편안하다. 침대가 과학인 것처럼 의자에 담긴 과학의 힘이다.

등받이의 매시(그물망) 처리는 기존 의자의 둔탁함을 대체했다. 각자의 신체 조건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최적의 각도와 길이의 조절기능은 감탄 그 자체다. ‘콘테사’를 사용한 이후 오랜 작업 시간에도 피곤과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등받이를 뒤로 젖히면 안락한 휴식용 의자로 변신하는 센스….

나의 ‘콘테사’를 자랑하고 싶어 근질근질하다. 친구들을 불러 한 번씩 앉아보게 했다. 시큰둥한 표정의 이면에 부러움의 빛이 역력하다. 세련되고 좋은 물건이 내뿜는 힘이다. 이젠 의자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괴롭지 않다. ‘콘테사’와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만 문제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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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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