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샤인 - 인류의 종말이냐, 구원이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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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14면

SF 영화에서 종종 우주선은 하나의 소우주를 뜻한다. ‘에이리언’ 1편에 등장하는 ‘노스트로모호’는 에이리언과 여전사 시고니 위버가 인류의 미래를 건 승부를 벌이는 사투의 현장이다. 대니 보일 감독의 신작 ‘선샤인’의 우주선도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영화는 8명의 대원이 탑승한 이카루스 2호의 뒤를 따르며 시작된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밀랍으로 붙인 깃털 날개를 달고 비행하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는 바람에 밀랍이 녹아 죽음을 맞이했다. 이카루스는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소망과 오만함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이다. ‘선샤인’은 이러한 신화적 이미지에 충실하다. 식어가는 태양을 되살리기 위한 폭탄을 싣고 날아가던 이카루스 2호는 7년만에 발견한 ‘이카루스 1호’와 도킹을 시도하면서 항로를 수정한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오해와 의심은 대원들의 죽음을 부른다. 대니 보일 감독은 갈등하는 8명의 인물들을 다양한 국적으로 채웠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주목받은 길리언 머피를 비롯해 식물학자 역에는 중화권 배우 양자경을, 과묵한 함장 역할에는 일본 배우 사나다 히로유키를 임명했다. 다양한 국적은 우주선의 상징적인 의미를 잘 보여준다.

감독 대니 보일 주연 길리언 머피 러닝타임: 107분 ★★★☆

무엇보다 가장 큰 위협은 이들의 희망인 태양이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태양의 열이 필요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태양은 생존을 위협한다. 꿈과 희망이 너무 가까이에 있을 때 이를 빌미로 희생을 강요받기도 하는 것이다. 가령 우주선 내의 산소가 부족해지자 희생을 강요하는 장면은 비극의 모순이 빛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인간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반짝이는 강렬한 태양빛은 단순한 SF 영화의 구경거리를 넘어선다. 희생이라는 어둠을 통해 빛을 밝히는 결말은 인류의 오랜 신화를 현대적으로 풀어가는 흥미로운 화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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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씨는 10년 전 주간지 공모전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한 후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방송에서 영화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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