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친다 퇴진·개헌 최대 쟁점/비관­낙관 엇갈리는 태 앞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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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왕 민선총리 선호에 기대 낙관론/의회에 군부세력 많아 난망 비관론
푸미폰국왕의 중재로 태국의 유혈시위는 일단락 됐으나 태국의 앞날을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
국왕의 중재내용 자체가 시위대의 우선적 요구사항이었던 수친다총리의 퇴진 등 구체적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라 문제를 국회 내부로 끌어넣어 평화적으로 풀어나가자는 원칙론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 정국의 앞날에 대해 현지 소식통들도 낙관과 비관으로 갈라져 분석하고 있다.
▷낙관론◁
태국 국왕이 전통적으로 사태해결의 대미를 장식해 왔다는 점에 무엇보다 큰 기대를 걸게 한다.
유혈진압,야당과 민주화운동 지도자 체포 등 모든 강경책을 동원했음에도 사태장악에 실패한 군부나 압도적 물리력에 큰 희생을 치른 야권이 다시 주어진 평화적 해결의 기회에 임한만큼 자세가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그런 기대를 뒷받침 한다.
국왕이 이미 「헌법개정」이라는 방식을 제시한 것은 민선총리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밝혀놓은 셈이다. 따라서 국회가 정상화 되면 비민선 의원의 총리 취임을 배제하는 헌법개정,이에 따른 수친다 퇴진,새로운 총리선출의 일정을 밟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문제해결 방식은 국왕의 종용사항일뿐 아니라 이를 외면할 경우 파국 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비관론◁
수친다총리의 거취를 둘러싸고 군부·집권 5개당 연합체는 대규모 시위사태 이전에 보였던 강경자세를 당장 바꾸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시위사태가 수친다총리의 퇴진으로 귀결될 경우 정치의 장에서 군부의 총체적 퇴진을 의미하기 때문에 현 군부집권 세력들이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개정은 상·하양원 합동으로 이루어지는데 상원의 2백30명 전원이 군부의 지명을 받은 처지고 제1·제2당이 모두 카셋 로자나닐 현 국군 최고사령관의 배후조종을 받고있다.
중산층이 집중된 방콕시는 지난 3월 총선에서 잠롱 전시장이 이끈 팔랑탐당에 35석중 32석을 몰아줄 정도로 야당을 지원하고 있지만 북부·동북부의 빈민지역은 여전히 여당의 세력권이다.
이 빈민지역들은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아 동사무소 기능은 주둔군 지휘관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아편·고무 등의 독점권을 쥐고 있는 군부가 사실상 작은 왕국을 구축하고 있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군부의 지지를 받는 정당은 압승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별로 지지세력이 분할돼 있는 현 집권 5개당 연합체는 군부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국왕이 종용한 국회에서의 평화적 해결방식이 오히려 또 다른 함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회 개회에 앞서 이미 시위군중들 사이에 국회습격설이 나돌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에 반해 군부끼리의 폭력에 의한 정권교체를 의미하는 쿠데타 발생가능성도 지극히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수친다총리를 정점으로 강경파인 카셋 국군 최고사령관,이사라퐁 육군사령관,차이나롱 제1군사령관,삼파오 방공포사령관 등이 모두 운명공동체인데다 태국 사상 단결력에서 최고수준으로 불린다. 또 육군의 경우 17개 사단중 8개 사단이 수도권에 배치되어 온데다 최근 다시 3개 사단이 국경에서 차출됨에 따라 대부분이 방콕시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형세다. 반군의 세력형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군부·여당은 대규모의 유혈진압으로 버텨왔으므로 남은 것은 정권유지를 위한 강경책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왕의 중재에 의한 새로운 평화적 해결에의 기회와 시간은 마련되었으나 군부가 기득권을 고수하며 사태변화의 수용을 외면하면 더 큰 시위사태 폭발과 재난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방콕=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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