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인 조순 前 한나라 총재가 본 정운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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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난 (정운찬 전 총장이) 현실정치의 벽을 넘을 수 있다고 봐요. 나보다는 더 잘할 수 있다고 봐요."

25일 서울 구기동 민족문화추진회 사무실에서 조순 전 한나라당 총재를 만났다. 그는 이 단체의 회장으로 있다. 기자가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와이셔츠 차림에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올해 팔순이란 나이를 믿기 어려웠다. 자신의 이름을 딴 ‘조순학파’가 한국의 대표적 경제학파가 됐을 정도로 그는 경제학에서 일가(一家)를 이뤘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뒤 정치에 입문해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총재까지 지냈다. 한때는 대권도 꿈꿨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그의 애제자다. 그는 2시간 동안의 인터뷰 내내 제자인 정 전 총장을 ‘그 사람’이라고 격이 있게 지칭했다. 또 “말 헤프게 하는 것 없으면서도 한번 하면 딱 해버린다”며 “제자지만 어렵고 두렵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지금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은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봐요. 여(與)든 야(野)든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정치권이 국민의 여론을 감안해 나라가 나아갈 바를 옳게 잡는 데 민주주의의 의미가 있는 것인데 지금 슬로건이 나온 게 있나요? 이슈가 나온 것이 있어요? 국민들이 그 이슈에 대한 소망을 표시한 것이 있나요?”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 합계가 70% 가까운데.

“난 보수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보수가 70%가 될 수는 없어요. ‘노무현 당’이 싫으니까 지지하고 있는 거겠지요. 거기 가서 잘될 것이란 기대가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사실 보수를 제대로 하려면 개혁을 제대로 해야 해요. 지금 과거로부터의 숙제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정치, 사회, 교육 등의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개혁이에요.”

-정 전 총장은 비정상적인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적임자라고 보십니까.

“나는 그렇게 보고 있어요. 지금 나와 있는 누구보다도 그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어떤 면이 그렇습니까.

“그 사람은 균형 잡힌 생각을 갖고 있어요.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식견도 있어요. 한국에서 이제는 기상천외한 생각을 가져선 안 돼요.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하려면 시간이 순리예요. 참아가면서 그 분야에 적합한 전문가를 골라서 맡겨야 해요. 서울대 총장 하는 걸 보니까 제대로 했어요. 서울대가 조그맣다지만 잘하는 것은 어려워요. 총장 이임식 때 사람들이 나와서 박수 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 일이 없었어요. 그 사람은 정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추진할 용기와 신념이 있어요. 키는 작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대통령이란 뜻을 이루지 못하셨는데.

“그렇지요. 난 이루지 못했어요. 그때는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강한 사람이 많았어요. DJ나 JP가 얼마나 강합니까. 이회창씨도 강했지요. 지금과는 다르지요. 지금은 강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때 이회창씨는 대쪽이라고 하고, 구태정치를 청산한다고 해서 희망을 줄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 거지요.”(※1997년 조순 총재의 민주당과 이회창 총재의 신한국당이 통합한 뒤 이 총재로 대통령 후보가 단일화됐다.)

-혼자서는 안 되겠더란 말은.

“나 자신의 한계를 느낀 거지요. 돈이 많이 필요하고.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과거의 구태에 젖은 거물이 없지 않습니까. 선거도 많이 투명해졌고, 국민들 자세도 많이 개선됐어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 나오기엔 훨씬 좋아졌어요.”

-총재님이나 정 전 총장은 경제학자인데, 많은 제약을 고려하는 경제학자의 특성이 운신을 제한하진 않나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경제적인 합리성만으론 정치를 할 수 없어요. 정치는 결론적으로 민심을 수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또 세상의 동향을 감지할 수 있고 정치적 수완(politics)도 필요하고요. 그것은 경제학만으론 안 돼요. 정 전 총장의 경우 실제로 정치행위를 하게 되면 많은 우려가 불식될 것으로 봐요. 그 사람이 말했듯이 decisive한(결단력 있는) 면이 있어요. 실제로 그래요.”

-정 전 총장은 어린 시절이 유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가난하게 자랐지. 그런데 태도는 귀공자야. 그게 멋지단 말이야. 부자에 대한 적개심이 없어. 가난하게 자랐다는 표시가 없어.”

그는 말미에 지식인은 모름지기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림)해야 한다며 율곡 이이 선생을 사례로 들었다.

-율곡 선생도 현실정치의 벽에 가로막힌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분이 48세에 돌아가셨을 거예요. 정치하다가 병을 얻어서 돌아가신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율곡전서 한번 읽어봐요. 그 양반 말한 것이 다 옳아요.”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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