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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 長考하는 경제학자 정운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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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출마 가능성은) 50대 50입니다.”

26일 오후 서울대 캠퍼스의 연구실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만났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었다. 장고(長考) 중이라는 사실만 분명했다. 그는 “지난 두 달간 전국을 돌아다닌 것은 국민들의 생각을 알고, 나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별로 성공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총재와 금감위원장 자리를 거절한 개혁적 경제학자의 단호함, 서울대의 위기였던 ‘황우석 사태’를 냉철하게 수습했던 서울대 총장의 과감성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요즘 사석에서 “몸과 마음을 나라와 역사에 바치는 일인데, 오히려 일찍 결정하면 경솔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소명의식일까, 가능성일까.

그는 천생 경제학자다. 서울대 경제학과 진학 후 40년을 경제학자로 살았다. 경제학자들도 피식 웃으며 수긍하는 유머가 있다. 물리학자와 화학자, 경제학자가 무인도에 표류했다. 해변으로 통조림 한 통이 떠내려왔다. 반응이 각각 달랐다. 물리학자가 “돌멩이로 깡통을 깨서 따자”고 하자 화학자는 “불을 지펴서 깡통을 가열시키자”고 했다. 경제학자가 말했다. “깡통 따개를 갖고 있다고 가정(假定)하자….”

가정을 전제로 경제이론을 만들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지기 쉬운 경제학자의 한계를 꼬집는 유머다.

경제학자들이 ‘가정’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은 현실의 수많은 제약요건을 의식하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 전 총장의 강연정치 두 달은 현실정치의 다양한 제약과 한계를 점검하는 기간이었다. 40년 친구인 이영선(연세대 교수) 한국경제학회장은 그를 “순진해 보이지만 결단력과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지난날의 그는 실제로 그랬다.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그의 신문 칼럼은 선명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을 맡은 지 6개월 만에 총장 선거에 출마할 때도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학생 선발에 지역할당제를 도입할 때나 정부의 ‘3불정책’을 비판할 때도 주저함이 없었다.

정 전 총장에겐 학계를 제외한 다른 분야의 경험이 거의 없다. 2000년 3월 재경부 금융발전심의회(금발심) 위원장을 맡았을 때다.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첫 회의가 열렸다.

“많이 고사하다가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조건으로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제대로 된 회의를 하겠습니다. 앞으로 회의 기록을 다 작성해서 위원들께 돌리겠습니다.”
금발심은 국내 최고 금융전문가 회의체지만 재경부 거수기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던 때다. 재경부는 늘 금발심 회의 내용 공개를 극도로 꺼렸다. 정 전 총장은 실제로 그날 재경부의 장기 금융발전 계획에 대한 회의 내용을 모두 기록해 위원들에게 보냈다. 그렇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재경부가 그 뒤 금발심 회의를 아예 열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그 자리를 맡긴 이헌재 재경부 장관이 물러난 그해 8월 재경부에 사표를 던졌다.

당시 금발심 위원이었던 한 인사는 “첫 회의에서 정 전 총장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회의가 열리지 않는 바람에 일을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강직한 개혁성의 이미지를 남겼지만 관료사회의 벽을 뛰어넘는 실용적 수완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엔 경우가 또 다르다. 아직 자신을 떠받칠 세력이 없다. 한나라당과는 같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범여권은 손을 벌리지만 실정(失政)의 책임이 있는 이들과 손을 잡는 것은 명분이 적다는 점이 고민스럽다.

정치 경험 부재는 신선한 이미지의 자산인 동시에 취약점이기도 하다. 그가 정치 경험을 쌓을 기회가 있긴 했다. 그는 올 1월 한 정치평론가로부터 지난 25일 실시된 대전 서구을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그걸 토대로 대선에 도전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냥 아이디어로만 여기고 흘려보냈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돼도 대선에 나가려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점과, 출마가 확실했던 심대평 전 충남지사와 표를 다투는 것이 도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1998년 김대중(DJ) 정부 출범 첫해 때 한은 총재 제의를 거절한 이유를 보면 그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 그는 지인들에게 “어쨌든 선생님(조순 전 한나라당 총재)은 DJ와 대선에서 싸운 셈인데, 상대방 장수가 오란다고 해서 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로서 몸에 밴 ‘원칙’과 ‘일관성’이 그의 코드다. 그러나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변화무쌍한 현실정치에선 정치적 직관과 수완이 요구된다. 바로 그 현실정치의 벽 앞에서 경제학자 정운찬이 망설이고 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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