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6·29」를 지켜본다(유승삼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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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영삼씨가 민자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됨으로써 우리 사회는 지난 87년에 이어 두번째로 권력의 축이 둘이 되는 시기를 경험하게 됐다.
김영삼씨나 민자당으로선 경선과정을 통해 분열된 당을 어떻게 봉합하느냐가 「발등의 불」일는지 모르나 국민의 입장에서 볼때 그것은 「댁의 사정」일 뿐이다. 대다수 국민의 주된 관심과 우려는 그렇지 않아도 지도력의 위기를 겪고 있는 정권이 중심축은 둘이 된데다 그나마 첨예한 내부적 분열상을 겪게 된 오늘,과연 이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굴러가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권력이 이원화되는 시기가 이번으로 두번째라고는 하지만 87년의 전­노시기와 현재의 노­김시기는 여러 모로 그 성격이 다르다.
○두번째 권력이분시기
첫째,87년의 전­노관계는 두사람이 같은 군출신인데다 12·12와 5·17까지 함께 치른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적 관계였다. 그러나 노­김관계는 도저히 이와 같을 수 없다.
둘째,전­노시기에 있어선 전 전대통령의 리더십이 최소한 대선때까지는 비교적 강하게 유지됐고 둘사이에도 분명한 상하관계가 이어져 권력축의 이원화에 따른 갈등과 혼란이 비교적 적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번 경선결과가 보여준 것처럼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노­김관계가 앞으로 엄격한 상하관계를 유지하리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셋째,87년의 전­노사이엔 「군정종식」의 거센 바람에 사력을 다해 함께 대응해야할 절박한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노­김관계는 정권재창출의 목표는 같지만 상황에 따라선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과 과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동몽이상적」관계다.
넷째,87년엔 국회가 여당의 압도적 지배아래 있었고 당도 단결돼 있어 6·29이후에도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는 여당의 의석도 크게 줄었고 그나마 두갈래로 찢겨 있다.
게다가 당시 전­노는 6·29라는 극약처방을 제시해 민심을 가라앉히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나갔지만 현재의 노­김은 권력승계의 후보만 선출했을뿐 적어도 아직까지는 정국을 주도하고 사회를 안정시킬 청사진을 내놓지 못했다.
○정국 청사진없어 불안
이런 점 등을 종합해볼때 지금부터의 노­김시기는 실질적으로는 우리 정치사에 있어 처음 맞는 시기라 할 것이며 그런만큼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갖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김영삼씨나 민자당으로선 과도기의 안정은 커녕 발등의 불을 끄기도 쉽지 않다. 이종찬씨가 경선포기를 선언했는데도 33.2%나 지지를 획득한 것을 보면 내부적 봉합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앞서는 것은 걱정뿐이다. 눈치빠른 고급관료들은 얼마나 흔들릴 것인가. 우리 사회의 해묵은 갈등은 차치하고라도 당장의 경제난은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에는 누가 지도력을 갖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정부는 이같은 상황에 대비해 최근 고위공직자들을 연수시키고 사정활동도 강화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의심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노­김이 할 수 있고 또 해야할 선택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전­노가 「6·29」라는 처방전으로 위기탈출을 했듯 그에 맞먹는 과감한 개혁의 처방전을 제시해 민심을 얻는 것 뿐이다.
○과감한 개혁처방 필요
노 대통령은 김영삼씨의 후보당선 축하연설에서 『우리 모두 김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재창출을 위해 굳게 단결하자』고 주먹을 두번이나 쥐어보이며 강조했다.
김 후보도 당선후 기자회견에서 『민자당은 가는 길이 하나고 오직 승리를 위해 단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권재창출의 의지를 다지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것이 가능하려면 국민앞에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이미 현재의 정책에 대해선 강한 거부감을 표시한 바 있는데 또다시 그에 대한 의사를 묻겠다는 말인가.
실은 이번 경선과정에서 이미 국가관리의 청사진이 제시됐어야 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 6·29에 버금할 국정쇄신책이 나와야 한다.
그 청사진에 걸맞게 대폭적인 당정개편을 단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국민들은 김영삼후보의 국가관리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관리의 청사진이 제시되고 그에 맞춰 새로운 진용이 구성된다면 국민으로서도 김영삼후보의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그리고 안목과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없이는 민자당의 위기는 극복되기 어렵고 그것은 우리 사회전체의 혼란과 불안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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