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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질'이 즐거운 수줍은 피겨요정

중앙일보

입력

중앙SUNDAY ‘피겨 요정’ 김연아(17 · 군포 수리고 2년)는 최근 또 한번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번엔 은반 위가 아니었다. 패션 잡지의 화보 모델로 나서 그동안의 소녀 이미지가 아닌 성숙 하고 여성적인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 ‘종달새의 비상’에 맞춰 새하얀 얼음 위를 우아하게 누빌 때는 그야말로 한 마리 작은 새가 따로 없다. 반면 ‘록산느의 탱고’를 배경음악으로 힘찬 율동과 정열적인 눈빛을 선보일 때는 한국 빙상을 일약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집념과 카리스마가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각종 인터뷰에서 가볍고 밝은 옷차림으로 수줍은 미소를 짓는 모습에서는 여고생의 순수함이 영락없이 묻어난다. 김연아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분신처럼 김연아를 따라다니며 딸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박미희(48)씨에게 “막내딸(김연아는 2녀 중 둘째다)이 집에서는 어리광을 좀 피우는가”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전혀 아니다. 말수가 적고 자기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혼자 국제대회에 나가면 집에 전화도 잘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무뚝뚝하다.”

그러면서 박씨는 딸의 타고난 승부근성에 혀를 내둘렀다. “어려서부터 어떤 기술을 새로 배울 때면 정말 깊숙이 빠져들곤 했다.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해내는 근성을 갖추었다. 고집도 세서 연아가 중학교 1학년 시절 갑자기 힘들다며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는 서로 매일 전쟁을 치르듯 싸움을 벌인 끝에 간신히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또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털털하며 낙천적인 기질도 있다.”

김연아도 자신의 대범한 성격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시니어 무대에 처음으로 출전한 지난해 12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한 뒤 “큰 국제대회 일수록 잘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더 긴장하고 승부욕이 생겨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일본의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에 대해서도 “아사다는 연습할 때 보면 정말 내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처럼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내가 덤덤한 성격이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좀 더 강한 것 같다”며 웃었다.

김연아의 무서운 집념은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때는 허리 통증 때문에 붕대를 동여매고 경기에 임해 TV로 지켜본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는 허리와 꼬리뼈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진통제를 먹고 경기에 나서 당당히 동메달을 차지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그러나 김연아는 피겨선수이기에 앞서 꿈 많고 할 말 많은 여고 2년생이기도 하다. 옛 노래 가사처럼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 살이에요”라는 그 ‘열일곱 살’이다. 여느 여고생들처럼 그 또한 틈날 때마다 ‘싸이질’을 즐긴다. 이미 200만 명 이상이 방문한 싸이월드 홈페이지(www.cyworld.com/figureyuna)를 통해 일기도 쓰고 일촌평도 주고받는다. 가끔씩 쓰는 일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에 유명해진 사춘기 소녀의 고민과 불편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낚이지 마세요. ‘화장하면 예쁜 것 같아요’라고 했는데 ‘내 얼굴 예뻐요’,‘마오와 이번에 친해졌어요’라고 했는데 ‘마오와 절친한 친구’”(2007년 4월 13일) 등 일부 과장된 언론 보도에 속상해 하는 내용은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대담한 연기와 사뭇 다르다. 김연아가 홈피에서 사용하는 신세대 다운 말투에 대해 일부 팬들이 지적하자 “내가 정말 말버릇이 나쁜 건지…. 솔직히 나만의 공간인 싸이에서 이름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 땜에 내 맘대로 글도 못 올린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그냥 나를 이해해줄 수는 없나”(2006년 1월 9일)라고 하소연한다.

최근에는 수영선수 박태환(18ㆍ경기고 3년)과의 관계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기도 했다. 비슷한 또래의 운동선수로서 서로 싸이월드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자 언론에서 ‘국민 오누이’라 부르며 둘 사이를 집중적으로 캐묻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세계피겨선수권대회를 마치고 4월 1일 귀국했을 때는 마침 박태환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따내 귀국 기자회견에서 둘의 만남이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박태환과 만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김연아는 배시시 웃으며 “글쎄요….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요. 둘 다 성적이 좋아 다행이고
메달을 따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좋아한 여고생, 최근 패션잡지 화보 촬영장에서 어머니 박씨가 전한 말에 의하면 “요즘 모델 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귀고리도 사오곤 한다”는 김연아. 은반 위의 화려한 연기와 치열한 승부의 세계 뒤에 숨어있는 ‘피겨 요정’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신화섭 일간스포츠 기자 [myth@il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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