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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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참 피어 흐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
29세에 요절한 천재작가 김유정의 대표적 단편소설 가운데 하나인 『동백꽃』의 한 장면이다. 소작인의 아들인 어린 소년이 마름의 딸에게 「당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노란 동백꽃」이 몇몇 평론가들에 의해 오류로 지적된 일이 있었다. 동백꽃의 색깔은 짙은 붉은색인데 「노란 동백꽃」이 웬말이냐는 것이다. 수술이 아주 많고 그 끝에는 노란색 꽃밥이 많이 달려 있어 작가가 순간적으로 착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동백은 봄철의 대표적인 꽃나무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2월부터 남쪽에서 개화해 북상하여 4월이면 중부지방에도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른봄에 다른 꽃들보다 먼저 푸른 잎에 둘러싸여 붉은 꽃이 활짝 피었다가 채 시들지도 않은 꽃들이 향내를 풍기며 떨어져내리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한다. 쓰임새도 다양하다. 나무는 매우 견고해 악기 세공용품의 재료로 사용되며,그 열매를 짜서 만든 동백기름은 식용·공업용·머릿기름 등으로 널리 쓰인다.
영호남지방에서는 동백과 관련된 민요가 많이 채록되고 있는데,「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마라,산골에 큰애기떼 난봉난다」 따위와 같은 구절이 많은 것을 보면 동백의 독특한 향기가 여인네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도 한몫 거들었음을 엿볼 수 있다. 동백꽃의 특이한 종류로 오색팔중이 있다. 한 나무에 다섯 색깔의 여덟 겹꽃이 핀다고 해 붙여진 이름인데,세계 유일의 희귀종이라고 한다.
임란때 울산 학성에 있던 이 귀한 동백나무를 왜장이 약탈해 풍신수길에게 바쳐 삽목한 동백 10여그루가 경도근교 춘사에서 자라고 있는데 몇몇 민간인들의 노력으로 그중 한 그루가 곧 고국의 품에 안기게 됐다고 전한다(중앙일보 5월17일자).
오색팔중 동백꽃의 4백년 한이 풀리게된 것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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