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선 「조율」2시간/청와대서 밝힌 노­이 후보 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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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 후보가 먼저 노 대통령에 면담신청/단독대좌로 입장변화 명분 얻어낸 셈
노태우대통령은 16일밤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거부를 결심했던 이종찬후보를 청와대로 불러 2시간여 설득한 끝에 이 후보를 경선결과 승복쪽으로 방향을 돌리는데 성공했다.
이 후보측은 그동안 ▲전당대회에서 정견발표 ▲「외압」당사자 문책 ▲김영삼후보추대위 해체를 요구하며 경선거부→탈당수순을 밟는 제스처를 취해 민자당경선은 파국직전까지 치달았으나 노­이 회동결과 일단 정상화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16일 아침 경선거부 기자회견을 취소한 이 후보측의 장경우선거대책부본부장은 고려대 선배인 김중권대통령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이 후보가 대통령에게 건의할 것이 있으니 면담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해 이날 극비회동이 전격 주선됐다.
이에 따라 오후 8시10분부터 10시25분까지 노 대통령과 이 후보의 단독요담이 이뤄졌고 김 수석은 면담이 끝난 뒤 노 대통령과 이 후보를 각각 만나 양자간에 이뤄진 대화내용을 종합해 밝혔다.
이 후보는 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민자당 경선이 김영삼후보측의 세몰이로 정책대결이라는 원래의 모습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김 후보측을 비난하면서 『김 후보 추대위 설치는 공정성에 위배되므로 대통령께서 공정한 장이 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과연 노 대통령이 진정한 자유경선의 의지가 있는지,「대통령의 속뜻」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나는 엄정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노심」운운할 수 있는가』며 다소 섭섭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죄송하다. 대통령을 어렵게 한 결과가 돼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집권당 경선을 처음하는 과정에서 규정이나 규칙이 미비한 것도 사실』이라며 『보고를 받아보니 양 진영 모두 불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본격적인 설득에 들어갔다.
노 대통령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택해야 하며 당선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이 후보를 다독거렸다.
노 대통령은 50년대말 조병옥박사와 장면박사의 민주당 경선에서 몇표차로 진 장 박사가 결과를 승복한 예를 들며 『장 박사가 그렇게 승복했으니 지금도 존경받는게 아니냐』고 달랬고 이 후보도 이에 동의했다고 김 수석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나는 앞으로도 엄정중립을 지키겠으며 이 후보도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를 내길 바란다』고 격려한 뒤 『당 선관위에도 자유선거 여건을 만들도록 지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사람의 면담도중 노 대통령이 『왜 합동연설회를 수용하지 않았느냐』고 말하자 이 후보가 『토론없는 합동연설회는 무의미하다』고 반발해 다소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수석은 면담결과에 대해 『노 대통령의 설득에 이 후보가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느낌상 잘 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김 수석은 「잘될 것」이라는게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경선이 중단되지 않고 예정대로 치러진다는 뜻』이라고 답변했다.
김 수석은 전당대회 연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이 후보가 경선포기에서 경선참여쪽으로 급선회하게 된 배경에 대해 당내에서도 해석이 구구하다.
김 후보진영에서는 이 후보의 이런 행동이 계산된 행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수적 열세를 절감한 이 후보가 『역시 이종찬』이란 대의원들의 반전효과를 노려 조강수 일변도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또 이 후보가 자신의 온건·합리적 이미지를 더욱 굳혀 경선이후 당내 지분을 확보하고 나아가 차차기를 겨냥한 다목적용 선회가능성에도 유의하고 있다.
김 후보진영에서는 16일 오후부터 ▲이 후보가 이날 아침 「중대결심」의 내용을 밝히기로 한 기자회견을 내부의견조정을 이유로 연기한 점 ▲이날 저녁 강릉연설회직후 서울로 돌아와 곧장 청와대로 들어간 점 등을 들어 경선포기 내지 탈당의 극한적 행동은 없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 후보의 속셈이 무엇이었던간에 노 대통령이 이 후보가 단독회동해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후보에게 입장변화의 명분을 제공해준 셈이다.
즉 이 후보는 『경선의 불공정성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간곡한 설득과 민자당의 정권재창출 및 정국의 혼란방지를 위해 경선에는 참여키로 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활로를 터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후보 선거대책위에 몸담고 있는 박태준최고위원 등 나머지 중진들이 『우리가 민정계 단일후보로 당신을 추천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와줬는데 이제와서 혼자살겠다는 얘기냐』며 경선거부 등에 반대한 것도 이 후보의 결심을 바꾸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 후보가 탈당할 경우 따라나설 현역의원이 다섯손가락을 넘지 않는다는 현실인식도 막판 결심번복에 중대한 고려사항이었을 것이다.
김 후보측은 그러나 이 후보가 경선에 참여한다해서 연말 대선때까지 돌출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점에도 유의하고 있다.
아무튼 김 후보로서는 여당사상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라는 명예를 안고 대선에 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대한 이 후보진영을 감싸안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 분명하다.<김현일·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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