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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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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극장가의 코드는 아버지다. 감동적인 부성애 영화들이 쏟아진다. 대부분 가정의 달인 5월 특수를 노렸다. '아들'은 15년 만에 휴가 나온 무기수 아버지가 얼굴도 모르는 아들과 보내는 하루를 그렸다. '날아라 허동구'와 '파란 자전거'는 각각 지능이 떨어지거나 장애인 아들을 감싸 안는 아버지 얘기다. '눈부신 날에'의 주인공 건달은 갑자기 나타난 어린 딸로 인해 새 삶을 찾는다.

가족영화는 아니지만 '우아한 세계'는 조폭 가장의 분투를 그렸다. 자식을 조기유학 보내느라 손에 피 묻히는 조폭 직장생활을 하는 기러기 아빠가 주인공이다. 유괴를 소재로 한 '그놈 목소리'에서도 아이의 아버지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올 상반기 코드가 아버지라 할 만하다.

아버지 영화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해외 입양아가 사형수 친아버지를 찾아오는 '마이 파더', 조창인의 베스트셀러 '가시고기'가 원작인 '귀휴' 등이 준비 중이다.

아버지 영화가 봇물을 이루는 것은 급증하는 가족영화 수요 때문이다. 가족단위 관람이 많아지면서 시장이 커졌다. 적은 제작비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감동 코드'라 실패 위험이 낮다는 것도 이유다.

한국영화에서 아버지는 꽤 오랫동안 부재했다. 가정의 중심은 어머니였고, 부재하는 아버지의 역할은 장남이 대신했다. 유괴당한 자녀의 복수도 강한 어머니가 했다('친절한 금자씨' '오로라공주'). 충무로 뉴웨이브를 이끈 386 감독들의 '살부의식'은 아예 한국영화의 주제가 됐다. 추락한 아버지들이란 TV 시트콤 속 희화화된 캐릭터로 각광받을 뿐이었다.

한국영화에서 아버지의 이미지가 달라진 것은 지난해 '괴물'이 기점이 됐다. 평소 무기력한 아버지는 딸이 괴물에게 잡혀간 뒤 투사처럼 일어선다. 딸을 살려내지는 못하지만, 딸이 죽기 전 구한 소년을 아들로 품어 낸다. 송강호가 연기한, 고군분투하는 서민적 아버지는 미워할 수 없는 따뜻한 아버지의 전형으로 남았다.

최근 아버지 영화에서도 아버지들은 잃어 버린 위치를 되찾으려 애쓴다. 하필이면 무기수에 사형수.양아치.조폭 등 모두 죄 많은 아버지들이다. 이들은 자식과 화해하며 가정으로 돌아오고 구원받는다.

그러나 영화는 역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 한 대기업 회장의 '심야 복수 활극'만 한 부성애 드라마가 없다. '눈에는 눈, 귀에는 귀' 보복 수준이 거의 조폭영화 급이다. 최고 흥행과 논란을 함께 거머쥔 아버지 영화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