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거짓말은 다 나쁘다? 누가 그런 거짓말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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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러스트레이션=이정권 기자]

거짓말쟁이는 행복하다(원제:Why We Lie)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지음, 진성록 옮김
부글북스, 324쪽, 1만3000원

거짓말을 밥 먹듯 하던 변호사가 있었다. 생일파티에 꼭 가겠다던 약속을 어기자 그의 아들은 소원을 간절히 빈다. "아버지가 제발 하루만이라도 거짓말 좀 못 하게 해주세요." 거짓말처럼 소원은 이뤄진다. 변호사는 24시간 동안 진실만 말하게 된다. 결과는? 어딜 가나 입에서 바른 소리만 튀어나오는 통에 생활은 엉망진창이 된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라이어, 라이어'의 내용이다.

이 영화의 교훈은 뭘까. 적어도 서양 속담인 '정직이 최선의 방책'은 아니다. 미국 뉴잉글랜드대 인지과학.진화심리학 연구소장인 지은이에 따르면 그렇다. '라이어, 라이어'는 "지나친 정직에도 반사회적인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단다. 책의 원제인 '왜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가'에 대한 우회적인 답변이기도 하다. 거짓말을 하는 게 자신과 사회 전체에 이로우니까 거짓말을 하며, 이는 인간성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라는 주장이다.

"진화생물학은 인간의 마음이 진리 추구의 도구라고 생각하는 일반 대중의 믿음을 지지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생식에 성공하는 데 기여하도록 진화돼왔다. 기만과 자기기만이 생존을 위한 끝없는 투쟁에서 승리하도록 돕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럽게 인간성의 한 부분이 됐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힘을 빌자면, 기만과 자기기만을 되풀이하며 진화를 향해 나아가는 이 인간 내면의 '장치'를 '마키아벨리 모듈'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그러므로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팔락스(Homo Fallax.속이는 인간)'라 해야 더 어울린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인간이 보여주는 헌신적 행동도 본질은 이기심이란다. 친족들이 유전적으로 얼마나 가까운지를 표시하는 '혈연계수'라는 게 있다. 가령 부모나 형제자매와는 0.5, 조부모나 이복형제와는 0.25, 사촌들과는 0.125의 혈연계수를 갖는다. 할머니가 손자를 애지중지 기르는 것도 자신의 유전자 중 25%를 남기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란다.

너무 당연한 얘기로 들리는가. 어떤 대목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미 들었던 내용의 되풀이로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의 재미는 진화생물학.인지과학.진화심리학 등을 넘나들면서, 당연하다고 넘겨버릴 수 있는 얘기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고 애쓴 데 있다.

특히 2, 3장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숱한 동물세계의 사례들은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동물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이다. 남부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자라는 꿀벌난초의 수분(受粉) 전략이 한 예다. 꿀벌난초의 한 종류인 '미러 오키드'는 후손을 퍼뜨리는 데 필요한 가루받이를 해줄 벌을 끌어들일 화밀(花蜜)이 전혀 없다. 대신 아주 영리한 기만전술을 쓴다. 벌의 암컷 모양을 흉내내는 것이다. 난초 꽃의 중심은 암펄의 반쯤 접힌 날개를 닮았으며, 검고 실 같은 윗꽃잎은 암펄의 더듬이를 아름답게 재현한다. 이를 가리킨 지은이의 표현이라니. "난초가 벌의 성적 충동을 이용하기 위해 '벌레 포르노그래피'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자기기만은 극단적이고 위험한 형태를 띨 수도 있다. 바로 '집단적 자기기만'이다. 애국심이나 도덕적 개혁운동, 종교적 열기 등 선과 악, 옳고 그름을 가르면서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 좋은 예다.

결론적으로 기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지은이는 인간이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기만이나 자기기만의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줄 게 아니라 진정한 역사를 가르치고, 대의명분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고결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로 다루자. 솔직하도록 노력하자."

책을 다 읽고 나면 불현듯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당 그 자체이며 탈당 얘기 자체가 후진정치"라고 말했던 정치인이 최근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 탈당했을 때, '보따리 장사꾼'등의 비난을 퍼부었던 다른 정치인이나 언론들이 실은 싱거운 짓을 한 게 아닌가 하는. 그는 본능에 따라, 어쩌면 자신도 모른 채, '마키아벨리 모듈'에 따라 행동했을 터이니 말이다.

글=기선민 기자
일러스트=이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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