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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일인처 여전히 “비참”/일 산케이,가족에 보내온 편지 게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TV 1시간 보는게 유일한 낙/옥수수밥 먹다 위나빠져 고통/“남북 통일 기다리며 살아갈 뿐”/천8백여명 입북… 60% 소식 두절
북한 재일동포를 따라 북한으로 간 일본인 처들의 생활이 비참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자전거에서부터 우유·안경에 이르기까지 생필품을 보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들이 고향의 친척에게 보낸 편지에서 북한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59년부터 84년까지 25년간 1백87차에 걸쳐 북한에 간 재일동포는 모두 9만3천3백21명. 이들은 당초 2∼3년 후면 일본에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지상 낙원」 북한땅을 밟았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당초 약속대로 일본에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송재일동포의 일본인처는 1천8백31명이며,이중 60%는 소식마저 두절됐다.
다음은 14일 일본 산케이(산경)신문이 게재한 일본인처들의 처참한 생활을 담은 편지를 요약한 것이다.
○…며느리가 작년 임신 9개월만에 조산했다. 우유가 부족해 쌀가루에 설탕을 넣어 아기에게 먹이고 있다. 1개월이 지났으나 전혀 자라지 않는다.
아들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없으니 우유를 2∼3개월분 보내달라고 한다.
그리고 막내 결혼식인데 아무리해도 2만엔이 부족하다. 도와줄 사람이 없어 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죄송하다(삼산 사나에가 지난해 1월25일 일본 시즈오카(정강)현의 오빠 삼산욱랑에게 보낸 편지).
○…딸애인 지자때문에 걱정이다. 지난해 8월부터 양쪽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유방에는 달걀만한 응어리가 생겨 점점 커지고 있다. 2월 입원해 대수술을 하기로 했다. 눈도 호르몬부족때문에 일어난 병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호르몬약이 없다. 지자는 어리기 때문에 건강이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호르몬 주사약과 위하수 약을 보내줬으면 좋겠다(영목학이 지난해 1월31일 가나가와(신내천)현 언니 상촌계자에게 보낸 편지).
○…3월에 보내준 돈은 잘 받았다. 어떻게 감사의 뜻을 보내야할지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난다. 지난해 보낸 돈을 기념해 포트를 샀다. 지난해 겨울 포트에 설탕물을 넣어두었더니 아이들이 너무마셔 설탕값이 엄청나게 들어 물을 넣어 마시고 있다.
○…북한­일본간의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일본인처의 고향방문이 꿈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 이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에 온지 만 30년. 일본의 친척들에게 너무 많은 원조를 받았다. 바보·얼간이라고 꾸중을 들어도 할말이 없다(판곡의자가 지난해 3월27일 후쿠오카(복강)시의 동생 북도부자에게 보낸 편지).
○…이곳의 우리들은 모두 병으로 죽을 것 같다. 앞으로 장기간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은 도와달라. 애원애소의 편지를 쓰는 것도 지쳤다(중촌육지가 지난해 10월28일 니가타(신석)현의 언니에게 보낸 편지).
○…어려운 말씀이긴 하나 중고라도 좋으니 부인용 자전거를 보내달라. 우편배달을 하고 있는 데 하루에 40리를 걷지 않으면 안된다(중원애자가 90년 7월6일 홋카이도(북해도)의 언니 가하절자에게 보낸 편지).
○…한쪽 눈의 백내장이 심해져 편지를 겨우 쓸 수 있었다. 안경이 있으면 잘 보일테지만 손에 넣을 수가 없다. 언니도 편지를 검은 매직펜으로 굵게 써 보냈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모두 만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북원전대가 지난해 9월25일 지바(천엽)현의 언니 좌등팔천대에게 보낸 편지).
○…요즘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좋아져 북한이 우리들 일본인처에게도 잘해주고 있다. 잘되면 고향방문도 시작될 것 같다. 나는 자나깨나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울다 웃다 한다. 보내주신 정성이 가득 담긴 피같은 돈을 소중히 쓰겠다(길전미대자가 지난해 3월13일 동경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그나마 즐거움은 밤에 1시간정도 TV를 보는 것이다. 그외는 모두 일 뿐이다. 하루라도 쉴틈이 없다. 조금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하기 싫은 일 뿐이다. 그것이 내가 걸어온 길이다. 일을 할때 등이 아프니 파스를 보내줬으면 좋겠다(영목유리코가 지난해 7월23일 시즈오카(정강)의 언니 영목방자에게 보낸 편지).
○…이가 없는 나는 매일 옥수수식사로 위가 나빠졌으나 조선의 통일만을 생각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 30년간 꿈에 보고온 고향,그리운 자매들을 생각할때 죽어도 날아가 만나보고 싶다. 엿이나 과자는 명절날 1㎏씩 배급받고 있다(육천문자가 90년 5월2일 지바(천엽)현의 언니 안전삼천대에게 보낸 편지).<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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