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단독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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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는 국내에서만 6만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중 제조 라인에 종사하는 현장인력 2만명을 뺀 4만명 중 연구.개발(R&D) 인력의 비중이 지난 10월로 절반(2만명)을 넘어섰다. 삼성전자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윤종용 부회장을 지난 12일 서울 태평로 삼성전자 본관 25층 부회장실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현재의 이공계 위기엔 외환위기 때 R&D 인력을 대폭 줄인 기업체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외환위기 때 이공계보다 오히려 인문계 출신들이 더 고통을 겪었다. 요즘 시대에 R&D 인력을 줄이면서 경쟁력있는 기업이 되긴 힘들다. 서울대 교수가 1천5백명인데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R&D 부문 석사가 7천명, 박사가 2천명이다. 5~10년 후면 이들의 저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될 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를 빼고는 R&D 인력 비중이 이렇게 높은 글로벌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대졸과 공고를 졸업한 생산직 인력을 모두 포함할 경우 삼성전자의 이공계 인력은 4만4천여명에 이른다. 신입사원 채용 때도 삼성전자는 상경계 등 일부를 제외한 90%를 이공계로 뽑는다."

-삼성전자는 해외에서도 인력을 찾아 채용하고 있다. 채용해 보니 국내 이공계 출신이 해외 출신보다 부족한 점이 있나.

"우수 인재의 채용에 관해서는 거의 집착 수준이라고 해도 좋다. 해외 공대는 교육과정 자체가 기술의 발전상을 빠르게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최신 기술과 지식 간의 차이가 작다. 개개인의 기본능력보다 재학기간 중의 학습 방법과 내용 차이가 큰 탓이다. 휴먼 네트워크도 풍부해 정보 수집 능력이 좋다. 국내 톱 클래스인 서울대의 경우 약 3백명의 공대 교수가 2백50명의 박사를 매년 배출하는데 이는 세계적인 초일류 대학에서는 찾기 힘든 비율이다. 대부분의 공대가 팀 단위로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의사소통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이 부족하다. 이런 점들이 하루속히 고쳐져야 국제적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

-어떤 인재가 삼성전자가 원하는 인재인가.

"아날로그 시대의 인재는 성실하고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인재는 창의력과 스피드를 갖추고 있고,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다. 정보지식사회의 언어는 영어다. 영어로 된 문서 한쪽을 읽고 분석하는 데 누구는 1~3분 걸리고, 누구는 20~30분 걸린다면 누굴 쓰겠는가. 서울대 등 국내 명문 이공대들이 하루속히 학부과정에서 영어 강의를 도입해야 한다. 저명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이 '교육은 어떻게 배우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국내 교육은 그렇지 못하다.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의 이사장도 맡고 있는데 공학교육 인증제도가 뭔가.

"1998년 초에 설립 논의 단계에서부터 참여했다. 이공계 인력을 쓰는 주요 소비자가 기업이라 국내 산업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삼성전자의 CEO로서 마땅히 맡아야 할 역할이라 생각했다. 공학교육 인증 제도는 공대에서 무엇을 가르칠지를 교수들만이 정하지 말고, 수요자인 학생과 소비자인 산업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결정하라는 것이다. 산업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평가단이 공대의 교육과정을 평가, 인증을 준다. 이런 생각은 이제까지 교육에 관해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던 대학들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정도의 패러다임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공계(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 CEO로서 사태의 본질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알렉산더대왕이나 칭기즈칸.나폴레옹 등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왕이나 지도자가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의외로 적었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컴퓨터를 처음 만든 과학자, 반도체를 처음 만든 과학자들이 세상을 훨씬 더 많이 바꿔놨다. 이 사회가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 전문가들을 존경해 주는 방향으로 인식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또 요새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세상을 살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지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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