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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갈 길 먼 한·미 FT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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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한 것은 실로 '역사적인' 발전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한.미 FTA가 실현되기까지는 중요한 정치적 단계의 이슈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한.미 FTA는 상호 교역을 늘리고 양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경제적 이익 이상으로 양국 간의 외교적 연대와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최근 긴장됐던 양국 관계를 떠올려 보면 이 협정은 더욱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미 FTA는 이제 두 나라의 수도에서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서울에선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회에 비준 동의를 요청해야 한다. FTA 지지 의원이 반대 의원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준 동의안의 통과를 결코 낙관할 수 없다. 이미 47명의 의원은 FTA가 농민과 노동자의 삶을 위협할 것이라며 FTA 반대를 위한 제휴에 나섰다.

워싱턴에서도 훨씬 어려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현 시점에서 부시 행정부와 의회가 한.미 FTA를 포함한 자유무역협정 문제에 대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해 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를 장악했다. 이제 미 의회에는 전반적으로 무역협정에 대해 경계하는 의원이 많아졌다. 새로운 의회 지도부는 노동기준 강화 등 몇몇 이슈에 대한 재협상을 백악관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모든 FTA를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미 의회는 자신들의 요구가 거부될 경우 모든 무역협정에 대한 논의를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는 2008년 11월 이후로 연기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 FTA의 특정 조항들에 대한 거센 반대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일부 의원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 시기와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한국의 부적절한 국내 보호 조항 등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쇠고기.쌀.감귤 등 일부 농산물에 대해 완전 개방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비난하고 있다. 미 행정부가 한.미 FTA의 주요 골격과 협정 체결 의사를 협상 타결 시한인 2일까지 미 의회에 통보했지만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신속협상권(무역촉진권.TPA)에 따른 협상 시한은 지났지만 의회 통보 후에도 미 의회는 90일 동안(6월 30일까지) 협정문안을 검토하고 새로운 제안을 제기할 수 있으며, 행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협상 결과의 개정도 모색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도 이미 한국과도 의회의 관심 사안인 특정 이슈를 재협상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바 있다. 이런 재협상 논의는 처음이 아니다. 2003년 미국과 싱가포르.칠레의 FTA도 90일간의 의회 검토 중 의회의 관심사에 대해 본질적인 개정이 이뤄진 바 있다.

FTA 심의 절차의 시한이 모호하게 규정된 것도 문제다. 일단 90일간의 의회 검토기간이 종료되면 대통령이 즉시 의회에 FTA 이행 법안을 상정할 수 있지만 미국과 페루.콜롬비아.파나마의 FTA처럼 실제 법안 제출 작업은 수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 게다가 법안이 제출되면 의회는 다시 90일간의 '입법기간'(의회 휴회 시엔 날짜 계산에서 제외)을 갖는다. 의회는 TPA에 따라 타결된 FTA 법안에 대해선 수정 없이 찬반 투표만 하게 돼 있지만 이런 절차 등으로 통과 시기가 올 연말은 물론 내년 또는 그 이상까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양국은 이제부터 상호 타협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은 자동차.투자.농산물 분야에 대한 미국의 요구사항들을 놓고 씨름해야 하며, 미국도 한국의 양보에 상응해 똑같은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미국 의회의 정치적 판도 변화, 부시 대통령의 인기 하락과 함께 임박한 양국의 대선 정국 등의 변수는 한.미 FTA가 이전의 어떤 FTA보다 고투에 직면할 것임을 예고한다.

김석한 미국 워싱턴 애킨 검프 법률회사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