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한국국권 강탈 확인/구한말 한­일조약 위조판명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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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당시 일 횡포 문서로 증명/양국간 외교 논란 거셀듯
서울대 규장각 소장자료 정리·분석과정에서 대한제국 말기의 조약·칙령 등에 황제의 수결이 누락돼있거나 일부 위조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일제에 의한 불법적인 국권 강탈 실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한일간의 논란이 예상되는 것은 물론 이 사실을 토대로 구한말 역사를 새롭게 기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의 이번 발표는 그동안 강압적이긴 했지만 일단 법적인 형식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왔던 구한말의 각종 조약 등에 결정적인 법적 하자가 있음을 처음으로 문서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일제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체결한 소위 을사보호조약의 경우 조약체결에 필수적인 황제의 위임장이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아 이 조약이 당시 국가원수인 고종이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체결된 국제법상 「원인무효」의 조약임이 분명해졌다.
서울대는 이와 함께 고종이 런던 트리뷴지 특파원 두글래스 스토리에게 맡겼던 친서를 게재한 1907년 1월16일자 대한매일신보도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이 신문에는 「황제가 애당초 이 조약을 인허하지 않았고 수결도 하지 않았다」는 등의 친서 내용을 담고 있어 을사조약이 고종의 재가·추인없이 일제에 의해 일방적으로 작성된 불법문서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더욱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순종의 수결위조 부분.
순종은 황제즉위전인 1898년 코피속에 타넣은 독극물을 모르고 마신뒤 심한 장애를 일으켜 정상적인 집무를 못할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종의 수결 진본이 기록되어 있는 「보인부신총수」를 보면 이로 인해 수결이 육안으로도 몹시 비뚤어지고 서투른 글씨체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칙령 등에 쓰여진 수결은 또렷한 정자체여서 다른 사람이 순종을 대신해 서명했음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이 칙령들은 조세제도를 일본식으로 개정하는 내용의 「재무감독국관제」등 각종 행정·치안·사법제도를 일제가 장악,이권을 합법적으로 차지하기 위한 식민지악법이 대부분인 것이 특징.
이밖에 옥새만으로 재가된 법령·칙령중에서도 도장이 두번 찍혀 있거나 도장이 미리 찍힌 뒤에 그위에 글씨가 쓰여진 것들이 상당수 발견돼 순종이 법령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옥새가 남발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는 『그동안 1년동안의 분석·대조작업을 거친뒤 법대 백충현교수(국제법)등 전문가 3명에게 원본자료 평가분석을 의뢰,전원으로부터 법적 하자와 수결위조사실을 확인받고 이번에 공식발표한 것』이라고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규장각 발표가 후속적인 정밀분석을 통해 최종검증될 경우 그동안 소위 한일합방 과정은 「국제법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주장해온 일본측의 공식입장이 논거를 잃게 되며 이에 따라 한일간의 「과거청산」이 새로운 이슈로 제기될 가능성이 크고 북한­일본국교정상화교섭에서도 전전배상문제 등이 큰 쟁점으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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