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과거는 청산되지 않았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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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제강점을 1차적으로 법제화한 1905년의 을사조약이 고종의 위임없이 체결되었고,2년후 정미 7조약의 칙령은 순종의 수결까지 일제가 위조했음을 밝히는 연구가 나왔다. 규장각 이태진관장의 발표를 보면서 우리는 다음 두가지 사실에 크게 주목코자 한다.
첫째,일본은 더 이상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려는 자세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황제의 비준없는 조약을 발표하고,심지어 황제의 서명까지 위조하는 범죄행위를 했으면서 한일합방을 「양국간의 협의에 의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일본의 자세는 차제에 당연히 고쳐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신대 문제에서 요코하마 한국영사관 난입사건에 이르는 최근 일본의 혐한자세 밑바탕에는 식민지 지배의 당연성과 「합법성」이 깔려있다고 본다. 헤쳐볼수록 불행했던 과거는 우리의 통한과 아픔으로 살아나는데 아직도 일본은 과거는 청산되었다거나 합법적 이었다고 일관한다.
우리가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지난달의 해묵은 범죄 사실을 들추어 오늘 일본의 발목을 잡아 몇푼의 돈을 배상 받고자 하는데 있지 않다. 양국간 지난날의 잘못을 서로가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반성과 경각심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서 발생했던 모든 만행에 대해 미화하려 들거나 합리화 하려는 자세는 버려야 할 것이다. 바로 여기서 한일간의 기본적 자세가 정립되고 양국간의 새로운 관계설정이 가능해지리라 본다.
둘째,우리 스스로가 깊은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정신대 문제에서 드러났듯 어째서 우리는 자신들의 통한의 망국사에 대해 이토록 소홀했고 무관심 했던가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말에서 일제 강점시기의 온갖 자료가 규장각 서고속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도 우리는 지금껏 이를 정리하고 체계화 하려는 작업에 소홀했다.
이토록 막중하고도 엄청난 역사적 작업을 몇몇 연구자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우리 정부 스스로가 역사의식을 지니지 못하고 있고,우리 스스로가 지난 역사에 대해 등한시 했음을 입증한다.
불행했던 역사에 대한 체계적 정리와 연구가 없었기에 다음세대를 위한 국사교과서에서도 을사조약과 정미조약 등 일제의 만행이 합법적 절차로 체결된 조약인듯 기록되고 있지 않은가.
규장각 연구진의 이번 성과에 찬사를 보내면서 이러한 자료정리 사업이 정부와 기업의 재정적 지원으로 보다 치밀하고 광범위 하게 이뤄지기를 촉구한다. 뿐만 아니라 이 작업을 토대로 우리의 국사교과서도 새롭게 쓰여져야 할 것이다.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성찰없이는 우리의 불행은 앞으로도 결코 청산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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