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정엔 안 맞는다|신 산업 정책 관련 논문요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이른바「신 산업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는『신 산업 정책은 실체가 없으며 다만 산업정책 부문 7차5개년 계획에 제시된 것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마련중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서고 있으나 재계는 재벌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나올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가 염려하는 신 산업 정책은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까지『내용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할 만큼 재벌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담겨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신 산업 정책」논란 와중에서 요사이 산업정책의 수립·집행관련 관가와 학계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논문이 있다.
최근 산업정책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강력히 주장, 화제가 되고있는 미국뉴욕 소재 뉴스쿨대 앨리스암스덴 교수의 글이 그것이다.
산업정책을 자유시장 원리에 입각한 영국·미국식, 정부의 개입이 강조되는 독일·일본식으로 구분하고 최근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해 한국정부가 80년대 들어 영·미식 정책을 편 결과라고 지적한 암스덴교수의 글은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르다.
『한국 실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고 혹평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반응도 있다.
암스덴교수가 지난해 12월 하와이 동서센터에서 발표한「영·미식 산업정책이 한국에는 해롭다」는 제목의 논문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한국이 앞으로도 과거 70∼80년대와 같이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자유시장 원리에 입각한 영·미식 경제발전 모델을 포기하고, 정부개입이 상대적으로 더 허용되고 기업과 정부의 유기적인 관계가 중요시되는 일본·독일식 경제발전 모델로 복귀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은 그들의 공업화 과정에서 기업이 자체의 기술개발 능력을 보유, 생산성 향상과 수출증대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기업은 정부로부터의 지원을 상대적으로 크게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한국과 일본 등 후발 공업국의 공업화과정은 선진국에서 이미 개발돼 상업화된 기술을 도입, 습득하는 과정을 밟았고 기업도 선진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과 낮은 임금에 의존, 선진국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 했다.
한국의 경우 최근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만든 것은 80년대 이후 과거의 일·독식 경제발전 모델에서 영·미식으로 전환한데 원인이 있다.
한국은 80년대 들어와 과거와 같은 빠른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한 영·미식 발전 모델의 채택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선진국을 따라잡는 과정만 늦어지게 했다.
일본의 경우 2차 대전 이후 미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을 잘해 일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으나 아직도 첨단기술발전과 민간소비억제를 위해 은연중 정부개입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은 이에 비해 지난 수십 년 간 눈부신 산업발전을 이룩했으나 아직도 어느 한가지 기술분야에서도 선진국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주요기술을 개발, 해당제품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킨 경우가 없었다. 따라서 한국경제 전체로는 아직도 비 경쟁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고 기업과 정부간의 관계에서도 효율성 측면에서 개선돼야할 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본·독일식 모델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 및 경제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따라 정부와 기업의 관계가 새로 정립돼야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후발 공업화 모델(일본·독일)의 범주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일본은 선진국의 기술이전 회피 등 경쟁이 덜 치열하던 시기에 산업발전을 비교적 손쉽게 이룩했으나 한국은 통상압력·기술이전회피 등 대외 경제여건이 불리한데다 일본과도 경쟁하고 있어 기업의 입장에서는 과거 일본보다 더 많은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에 보조금 등을 지원해주고 성과의무를 달성시키는 방향으로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하게되는데 80년대 이후 한국은 경제민주화에 따라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나빠짐에 따라 기업에 대한 지원을 주저하게 됐고, 기업도 정부의존도를 줄여 정부와 기업의 상호주의 원칙이 약화됐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는 정부와 기업·근로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며 기업의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정치자금을 엄격히 통제하거나 국회의원의 임기를 2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
상공부와 경제기획원을 통합, 산업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하며 재벌의 구조를 현대화하기 위해 재벌그룹의 은행부채를 주식으로 전환시키고 5∼6개의 준공의 투자기관을 신설, 재벌의 기업경영을 감시해야 한다.
근로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근로자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길진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