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벌어도 자녀교육 갈등/성공과 좌절(미국속의 한인들: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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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에 짓눌려 얼굴대할틈 없어/빨리 적응해도 명예욕 못채워
할리우드의 영화에서 본 넓은 정원,큼직한 자동차,화려한 파티 등을 꿈꾸며 미국을 찾는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실망감을 맛본다.
뉴욕의 경우 그 유명한 JF 케네디 공항에서부터 맨해턴중심가에 이르기까지 벽이란 벽에는 온통 낙서투성이고 거리는 휴지로 어지럽다. 신문을 봐도 온통 살인사건 뿐이고 선배 이민자들도 말끝마다 「강도 조심하라」는 충고를 반복한다.
그러나 한인들의 적응속도는 아주 빠르다. 실제로 미국사회에서 한인들은 놀랍도록 빨리 부상하는 민족으로 손꼽히고 있다. 대부분 건물주들은 한국인에게 세를 주려고 애쓴다. 건물을 깨끗이 쓸 뿐 아니라 집세도 꼬박꼬박 잘내기 때문이다. 뉴욕시 플어싱구의 경우 주민들은 죽어가는 동네를 한인들이 살려놓았다고 공공연히 칭찬한다. 맨손으로 이민와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일군 한인들의 성공담은 너무도 많다.
버지니아주 제11지역구에서 오는 11월 연방하원에 도전하는 김재욱씨(TWK대표)는 단돈 2백달러를 쥐고 유학와 이민생활 25년만에 박사학위 소지자 1백명을 거느리는 첨단기업의 사장이 됐다. 이 기업은 지난해 미 해군과 무려 7만달러짜리 계약을 체결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민 초기부터 하루 18시간씩 일하면서 숨가쁘게 산 결과 「비정상적인」 초고속 성장때문에 겪게 되는 부작용도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성급함때문에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한·흑갈등의 원인으로 흑인들의 시기심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흑인들의 사고가 단순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지적이 많다.
이외에 교포들의 성급한 성공욕이 빚은 또 하나의 큰 좌절은 자녀교육. 한인들중 많은 수가 이민오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자녀교육을 꼽지만 실제로는 자녀들을 내팽개치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가게에서 밤늦도록 일하다보면 자녀들의 얼굴을 대할 시간조차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에 가면 낯선 얼굴들에 둘러싸여 언어소통조차 제대로 안돼 스트레스로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런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마약에 손을 대는가 하면 갱단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다.
뉴욕 교포사회에서 유지로 손꼽히는 모씨는 가출한 딸을 중국계 갱합숙소에서 찾아와야만 했다. 어렵게 찾은 그 딸은 그러나 또다시 가출해 마약중독자가 된 채 마사지업소의 접대부로 흘러갔다. 이처럼 이민 1세들은 경제적 성과때문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자녀들의 탈선이나 부부간의 가정문제·노인문제 등으로 남몰래 좌절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지적응이나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보니 생활에 가장 기본적인 가정내의 문제들에 소홀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교포사회 이혼율이 미국보다는 낮지만 한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교포가정의 갈등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가정문제를 겪지 않은 교민들에게도 고충은 있다. 명예욕을 채울 수 없는 교민사회의 한계가 그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쓰며 살아도 거기에 걸맞는 「사회적 신분」을 얻기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런 면에서 교민들은 또다시 좌절의 벽에 부닥친다. 여기에서 남아도는 에너지가 교민사회의 결속과 봉사 등 사회기여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뉴욕지사=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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