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정수정씨, 20년간 그림 1천여점 기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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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화가 현봉(玄峰) 정수정(鄭洙正.49.대구시 남구 대명동)씨는 '퍼주는 화가'로 통한다. 국내 미전에서 수차례 상을 받은 그의 작품은 꽤 값이 나가지만 鄭씨는 자신의 재능을 모두 이웃돕기에 쓰고 있기 때문이다.

鄭씨의 꿈은 어려서부터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완고한 집안 분위기 때문에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는 뜻을 밝힐 수 없었던 그는 대구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해야 했다. 공직에 몸을 담긴 했지만 '끼'는 숨길 수 없었다. 공무원으로 살면서도 그는 1981년에 한국미술대상을, 82년에는 한국 현대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전업 화가들도 되기 힘든 '2관왕'에 올랐다.

鄭씨가 공직을 떠나 그림에만 몰두하게 된 것은 이들 상을 받은 뒤인 84년.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매달 3~4점씩 그린 그림이 1천점에 육박하지만 이중 鄭씨의 손에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대부분 불우이웃 돕기에 써버린 것이다.

주변에선 "좋은 그림을 좀 남겨 팔았으면 아파트 몇 채는 샀을 것"이라며 혀를 차기도 하지만 鄭씨의 이웃 사랑에는 흔들림이 없다.

특히 98년 폐암 선고를 받은 뒤에도 그는 자선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림을 팔아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도와온 그지만 2000년 4월 강원도 고성에 산불이 났을 때는 직접 그림 몇 점을 골라 들고 강릉시청을 찾아 "팔아서 피해 주민을 도와달라"며 건네기도 했다. 지난해엔 직접 노래를 부른 음반을 내는 '외도'를 해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도 했다. 또 월드컵 때 대구를 찾은 한국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에게 "온 국민에게 기쁨을 심어달라"며 손수 그린 병풍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런 鄭씨가 이번엔 외로운 노인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나선다. 그는 15일 대구시의 한 양로원을 찾아 위문 행사를 열 예정이다. 그간 鄭씨의 이웃 사랑에 감탄해온 그의 팬클럽(?) '현봉의 그림 속 노래사랑' 회원들 1백여명이 행사를 거든다.

"여러분들의 도움 덕에 내년부턴 매달 양로원들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며 기뻐하는 鄭씨. 그는 "병 때문에 '언제까지 이웃 돕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만 하면 조금 초조해진다"며 "단돈 천원이든 만원이든 도움을 주실 회원들이 더 늘어났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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