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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열반한 서옹 큰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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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 열반송

臨濟一喝失正眼 임제의 한 할은 정안을 잃어버리고
德山一棒別傳斷 덕산의 한 방은 별전지가 끊어지도다
恁來恁去 이렇게 와서 이렇게 가니
白鶴高峯月輪滿 백학의 높은 봉에 달바퀴가 가득하도다

※"임제. 덕산 선사의 가르침도 놓아버렸다. 이렇게 왔다 가니 백학(백양사가 있는 백암산으로서 백학을 닮았다고 함)의 높은 봉에 달바퀴가 가득하도다"라는 뜻.

앉은 채로 죽음에 든다는 좌탈입망(坐脫立亡). 우리 시대 최고의 선승(禪僧)인 서옹 스님은 대중에게 그런 식으로 높은 수행과 법력을 확인시키고 먼길을 떠났다. 한점 흐트러짐도 없이 앉은 자세 그대로 열반에 든 것이다.

14일까지도 서옹 스님의 법구는 전남 장성군 백양사 방장실인 설선당에 앉은 자세 그대로 모셔져 있었다. 서옹 스님의 제자 스님들은 오는 19일 열릴 영결식과 다비식 때 앉은 자세 그대로 입관하기로 결정했다. 조계종에서 모처럼 보는 좌탈입망이기 때문이다. 관의 크기는 높이 85cm, 앞면 길이 85cm, 옆면 길이 75cm이다.

백양사 주지를 지낸 학능 스님은 "서옹 스님의 좌탈입망은 90세가 넘은 노스님으로서는 보기 드문 일로 평생 수행 정진한 큰스님의 살림살이를 그대로 보여준다"며 "서옹 스님의 은사 만암 스님이 좌탈입망한 모습 그대로"라고 밝혔다. 근세 불교계에서는 드물게 스승과 제자가 좌탈입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옹 스님은 열반하기 직전에도 시자인 호산 스님과 두백 스님(백양사 주지) 등과 오묘한 내용의 선문답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평소 함께 지내던 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뒀다.

서옹 스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선승이자, 현대 한국불교를 지탱해온 큰 기둥이었다. 백수(百壽)에 가까운 나이에도 스님은 동안(童顔)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늘 대중을 가까이 했다.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스님은 1996년부터는 백양사 방장으로 후학을 지도하고 불자들을 바른 길로 안내해 왔다.

평소 서옹 스님은 참선을 강조했다. 참선이 가장 쉬우면서도 올바른 수행법이라는 주장이었다. 최근 우리 불교계에 들어오고 있는 다양한 수행체계에 대해선 우려를 하기도 했다. 서옹 스님이 2000년에 무차선회(無遮禪會.신분에 관계없이 깨달음을 논하는 법회)를 열었던 것도 참선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선승까지 초대, 국제 불교 학술대회를 자주 개최했던 것은 참선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64년 무문관(無門關) 초대 조실을 거쳐 동화사.백양사.봉암사 등 선원에서 조실로 있으며 납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스님은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청규를 철저히 지켰고 대중과 더불어 울력하고 공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교 신자들 사이에 서옹 스님은 93년 시작한 '참사람 운동'으로도 유명하다. 스님은 "우리 인간이 이대로 가다가는 멸망하고 만다. 그러니 모두 불법(佛法)으로 돌아가 자유자재하는 '참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 인간이 역사를 바르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본래 인간이 지니고 있는 참사람의 성품을 발견할 때 갈등과 투쟁은 사라지고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서로 존중하는 평화로운 세상, 곧 불국정토(佛國淨土)가 열린다"고 설법하기도 했다.

지난 7월 출간한 서옹 스님의 대중 법문집 '사람'(고요아침)에는 참사람이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참사람은 본래로 선과 악, 또는 이성을 초월하여 생사(生死)도 없다. 시간과 공간이 거기에는 존재하지 아니한다. 근본원리와 신(神)도 있을 수 없다. 부처도 없다. 여기에는 무한한 자기부정(自己否定)만이 지속한다.' 대중 법문집 외 저서로는 '선과 현대문명' '절대 현재의 참사람' '임재록연의' '참사람 결사문' 등이 있다. 이 중 서옹 스님을 선지식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임재록연의'였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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