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히말라야 등정 등 12차례 원정|"산 열정에 늙는 줄 몰라요"|고희 앞둔 산악인 박철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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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산에 왜 가느냐』는 질문에 1920년대초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등반에 나선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 대원 조지 말로리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히말라야」 등반이 시작 된지 70년이 지난 요즘도 우리 주위에서 자주 이같은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말로리가 던지고 간 그말 한마디 외에는 아직까지 더 명쾌한 대답이 없는 것 같다. 단지 산악인들 사이에 『왠지 모르지만 산에 이끌려서…』 또는 『산의 부름을 거역할 수 없어서…』라는 솔직한 독백만이 좀더 포장되곤 할 뿐이다.
아무튼 알피니즘이 탄생한지 2백년, 그리고 본격적인 히말라야 등반 시대가 시작 된지 한세기가 지나는 동안 산의 영웅들이 무수히 탄생했고, 또 무수히 스러져갔다.
8천m급 거봉들과 난공불락의 봉우리들을 처녀 등반한 산악 강국들은 말할 것 없고 해외원정의 역사가 불과 30년 밖에 안되는 우리 나라에서도 영광스러운 정복과 비참한 최후로 점철돼 이제 한권의 등반사가 나옴직한 때다.
77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8천8백48m) 정복에 성공했고 히말라야의 거봉인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에 등정의 거보를 내디뎠으며 알프스 3대 북벽과 북극점·북미의 매킨리·남미의 아콩가과·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 세계의 명산과 극지 마다 한국인들의 선명한 발자국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만년설이 뒤덮인 히말라야의 대자연과 맞서 싸우는 산악인, 이 땅에 알피니즘을 뿌리내린 장본인은 과연 누구일까. 김정섭·고상돈·허영호 등 한국의 이름을 전세계에 빛낸 알피니스트들이 많지만 그 중에도 역시 경희대 명예 교수 박철암씨 (69·중문학)를 첫손에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히말라야 등반을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인 지난 62년 사상 최초로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제2봉 (7천5백51m)을 등반한 뒤 히말라야 산회를 포함, 해외 원정 등반을 12번이나 거치는 동안 각종 탐사와 학술 활동까지 곁들여 우리에게 히말라야의 실체를 밝혀온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또 아직까지 세계 학계에도 보고되지 않은 각종 히말라야의 선경과 기화요초를 카메라에 담아 세계 학계에 보고도 하고 도서엑스포에도 출품할 화보집 『히말라야 비경』을 다음달 말께 출간할 예정이다.
『어릴 때 처음 산을 찾게된 것은 옛 어른들이 산 위에 「노아의 방주」 같은 배 조각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으로 산에 오르곤 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산을 찾는 정서도 달라지더군요. 이제는 산이 언제나 정겹게 맞아주기 때문에 산을 찾습니다.』
평남 영원군 동백산 (2천96m) 산허리에서 태어나 산과 인연이 깊은 그는 해방 후 가족들과 함께 월남한 뒤에도 줄곧 설악산과 지리산·화악산·태백산 등을 넘나들며 산의 매력에 심취해왔다.
『사람들은 누구나 숨길 수 없는 야망과 정열을 갖게 마련이지요. 내게도 그런 것이 있다면 주저 없이 산에 대한 열정을 꼽을 수 있고, 미지 탐구에 대한 욕망도 강했습니다. 어린 시절 고원지대에 살았기 때문에 마타리꽃과 같은 고산초화를 좋아했어요. 지금도 산에 오르면 으레 갖가지 풀꽃을 카메라에 담곤 하지요.』
전공이 중국문학이고 고희의 나이지만 미지의 세계와 꽃에 대한 박 교수의 열정과 탐사정신은 남다르다.
62년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다울라기리봉을 원정했고 65년엔 대만 옥산 (3천9백70m) 등정을, 67년엔 일본 북 알프스, 71년엔 히말라야 로체샬봉 (8천3백83m)을 원정했다. 또 84년엔 쿰푸히말 타미르 지역을 단독 탐사했고 86년엔 히말라야 좀슨 지역을, 87년엔 랑탄히말, 88년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북쪽 지역인 무쿠티나트를 단독 탐사했다.
탐사대까지 조직한 89년엔 히말라야의 부탄과 시킴 지역을 탐험했고 90년엔 한국 최초로 네팔 지역에서 티베트를 탐험하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해에는 한해에도 두차례나 원정을 떠나 6∼7월중엔 사상 최초로 실크로드 서역 남로를, 10∼11월에는 중국 대륙에서 제일 높은 시샤팡마 (8천12m)와 세계 7위봉 초오유 (8천2백1m)를 연속 등정하면서 중국 최대호 청해호 (4천5백평방m)와 청장 고원 지역을 탐험하고 돌아왔다.
국내에는 좀처럼 알려지지도 않았고 변변한 학술 자료조차 없었던 이 지역들의 탐사는 하나같이 학계에서도 좀처럼 평가하기 어려운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선 모두 국내에서는 한차례의 시도조차 없었던 최초의 탐사였다는 점이고 일본·미국 등 선진국의 저명한 학자들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고산 식물 등 희귀 자료들을 담고 있기 때문.
지난 83년엔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들 중 중후한 인품을 지닌 산악인 30여명을 모아 한국 히말라얀 클럽을 결성하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기존 여행 패턴과 완전히 다른 독특한 탐험에 나서고 있다. 그가 회장인 히말라얀 클럽의 첫 사업은 지난 89년2월에 있었던 네팔 히말라야 지역 트리스리강 유역 최초 탐사. 9명으로 구성된 탐사 대원들이 급류를 타고 트리스리강 상류에서 하류까지 이틀간의 보트 탐사에 성공했었다.
박 교수의 열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산악 정신을 심기 위해 오는 6월말께엔 그의 13번째 해외 탐사 계획인 신강∼청해∼티베트를 거처 한국 등산사 최초로 중국 쪽에서 초모랑마 (에베레스트의 중국 이름) 탐험에 나설 예정. 평범한 노인들이 대개 60세를 넘어서면 거동조차 줄이는 현실에서 그의 탐험 정신은 경외감마저 들 정도다.
그는 요즘 경희대에서 1주일에 두차례 있는 강의를 빼곤 부인과 함께 대개 설악산 입구 백담사 인근에 있는 자신의 조그마한 농막 「용담 농원」에서 머문다. 지난 64년 산악인 후배로부터 건네 받은 이곳에는 1천평 남짓한 텃밭에 희귀 고산초화인 금강초롱을 비롯해 마타리꽃·용담초·금란화·병풍나물·산사나무 등이 사시사철 꽃을 피운다고 소식을 전하는 그는 틈이 나면 히말라야산 난초도 키우고 계류 낚시도 즐긴다고 했다. <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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