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흑인폭동 왜 일어났나(폭발한 「검은 분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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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난… 멸시… 끝없는 차별/모든분야서 소외 패배감 누적/아시아인에도 밀려나자 절망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폭동은 미국사회에서 언제고 터질 것으로 예상되던 일이었다. 미국에서 인종분규,특히 흑인문제는 억눌려 있긴 했지만 항상 터질 가능성이 있는 뇌관같은 존재였다.
1620년 영국성공회의 청교도 분리주의자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 동북부에 첫발을 내디뎌 국가가 형성된후 광활한 대지를 개간하기 위한 인력조달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옴으로써 인종분규의 싹을 틔웠다.
그후 계속된 영토확장과 이민정책으로 실로 「세계 인종의 전시장」으로 불릴만큼 미국사회는 다인종으로 구성돼왔다.
이같은 다양한 인종집단들은 미 정부가 꾸준히 하나의 국가속에 동화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펼쳐오긴 했으나 이상적인 다민족사회를 완벽하게 이루지는 못했다.
정치·사회·문화적으로는 사실 앵글로 아메리칸이 지배해 왔으며 새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그런 지배제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백인계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자산과 경험을 통해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 형성에 기여했지만 인종주의와 그에 따른 차별대우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소수민족중 미국인구의 12.6%를 차지하는 흑인들은 대부분 노예 이민의 후손이라는 심리적 콤플렉스에다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백인들의 드러나지 않는 멸시 속에서 좌절감을 지닌채 살아오고 있다.
미국내 상당수 흑인들이 만연한 실업과 주택난 등 비참한 환경 속에서 범죄집단으로 인식되는등 백인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아오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백인들은 말로는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차별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시간대의 사회학자인 레널즈 팔리교수가 최근 발표한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흑인이 이웃으로 이사오면 다른 동네로 옮기겠다는 백인가정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정치·경제·사회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백인들에게 우위를 빼앗기고 있는 흑인들은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다. 부유층의 소득은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흑인들이 속해있는 저소득층의 생활수준은 80년대이후 계속 악화되고 있고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흑인들은 더욱 설땅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높은 실업률로 무주택자는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흑인 청·장년중 절반이상이 마약이나 갱관련사건 등에 연루돼 감옥생활을 경험한다.
이러한 현실과 더불어 이들을 자극하는 또다른 요인으로는 흑인이외의 유색인종(미국인구의 약 3.6%)의 상대적 성취를 들수 있다.
일본·중국·한국계 이민들이 자신들보다 짧은 이민경력을 갖고도 사회·경제적으로 우위를 차지,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포사회(특히 뉴욕이나 LA 등 대도시)에서 최근 빈번히 발생하는 한·흑갈등은 이들의 심리상태를 드러내주는 예라 할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미국의 사회복지부문 예산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근면한 유색인종이 미국사회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냄으로써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과 질시속에 이들은 불만의 표출구를 기다려 왔다고도 할 수 있다.
비록 법원의 평결이 LA흑인폭동사건의 직접적인 도화선이긴 하지만 사회밑바닥에서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다수 흑인들의 불만은 앞으로도 계기만 있으면 폭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된 흑인들의 인종폭동은 「원죄」를 지닌 미국에서 영원한 불씨로 계속 남게되는 치유불가능의 고질병인지도 모른다.<정봉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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