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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현대 분리 “산넘어 산”/정부­현대 「화해」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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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업은 살리되 정치세력화 견제/정대표는 인력철수엔 불응할듯
정부­현대간의 화해움직임이 가시화 되면서 국민당과 현대간의 관계단절 여부가 관심을 끌고있다. 이 문제는 정주영씨가 정치를 시작함으로써 비롯된 문제이므로 최종 해법 역시 정씨의 손에 쥐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아무리 정경분리를 강요하고 현대가 승복할 자세를 보이더라도 정씨가 거부해버리면 화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현대와 국민당을 한묶음으로 압력을 가해오다 최근 들어서는 「경제(현대)는 살리되 정치세력화(국민당)는 견제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조짐은 지난 25일 청와대 회동에서 윤곽을 드러냈다.
정부­현대간 화해를 모색해온 재계의 요청으로 마련된 모임에서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은 수차례에 걸쳐 「정주영 전명예회장의 정치참여에 따른 물의」를 노태우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정회장은 나아가 『국민당과의 관계단절을 위한 「가시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노대통령은 『기업활동은 힘껏 돕겠다』고 화답했다.
청와대 회동의 메시지는 이튿날 골프모임에서 재계수뇌라는 징검다리를 거쳐 정주영국민당대표에게 바로 전달됐다.
정대표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나 대통령에게 타격주는 생각을 하지않으면 좋겠다는 재계의 권유를 「경제를 위한 충정」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야당 대표로서는 이례적으로 민자당의 후보경선을 『제대로 하고있다』고 긍정평가 했으며,자신의 목줄을 죄어드는 증권감독원의 증권거래법 위반조사에 대한 질문에는 『무슨뜻인지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정치자금을 폭로하고,명백한 불법행위인 현대상선 탈세사건을 「정부의 거짓발표」라고 대들었던 이전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그러나 문제는 정대표가 국민당과 현대 관계를 실질적으로 단절하는 가시적 조치를 취해달라는 정부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이다. 정부측은 ▲가지급금 2천4백83억원의 반납 ▲국민당 소속 현대인력·장비의 철수 ▲기타 실질적관계 단절조치 가시화 등을 현대측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기본시각은 『국민당이 현대 돈을 계속 끌어다 쓰고있다』는데서 벗어나지 않고있다. 하지만 정대표의 주장은 정반대다. 정대표는 유화적인 자세를 보인 28일 기자간담회에서도 『현대 돈은 물론 나의 아들·형제 돈 한푼도 쓰지않았다』고 말했다. 재계쪽에서는 정대표가 지난해 종업원 지주제에 따른 주식매각 등으로 이미 적게는 2천억원에서 많게는 5천억원까지의 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중 일부(5백억∼7백억원)를 총선때 썼으며 나머지는 대선자금이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대표의 수표 하나하나까지 추적하는 정부의 그물감시망 하에서 현대 돈이 국민당으로 흘러가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자금면에서의 국민당­현대간 관계단절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국민당을 탄생시킨 현대인력이 국민당에서 철수하기는 더 어렵다. 국민당은 「총선후 현대직원 대부분을 돌려보내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중앙당 소속 1백50여명중 30명 가량만 돌려보내는 현실적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대선기획단이 발족되고 본격 선거전에 돌입하면 오히려 현대인력을 더 끌어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정대표가 아무리 화답의 제스처를 보여도 「현대와의 단절」엔 이같은 어려움이 있다.
정대표가 대통령후보 출마를 포기하리라 예측하는 것도 현재로서 거의 가능성이 없다. 때문에 정부와 국민당간엔 당분간 화해의 분위기가 계속될지 모르지만 갈등청산의 기대는 아직 성급하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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