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간 전체회의 1시간 … 2억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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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0년 6월 정상회담 이후 각종 회담에서 과다한 경비 지출로 혈세가 낭비된 데 대해 새로운 협상 절차와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구체적 비용 공개 않는 정부=진동수 남측 위원장(재경부 차관)을 비롯한 대표단 43명은 대한항공 전세기를 이용했다. 이전까지는 베이징에서 갈아타는 일반 항공편을 이용해 왔지만 이번에는 시간을 아껴 회담을 효율적으로 하겠다며 전세기를 택했다. 서울~평양 간 직항 전세기를 한 번 운항하는 데는 8000만~1억2000만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에서의 경협추진위를 한 번 치르는 데 항공료를 포함해 2억원 안팎의 비용이 들어간 셈이다.

정부는 "남북 간 회담행사는 민감한 대목이 많아 기본적으로 비밀"이라며 비용 공개를 않고 있다. 2005년 9월 통일부에 대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국감 당시 '회담행사 예산집행 현황'이 제출됐지만 총액만 있을 뿐 어느 항목에 얼마나 쓰였는지 명세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 남북 대결식 허세 부리기 여전=서울에서 회담이 열리는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00년 이후 20차례의 장관급회담과 13차례의 경제협력추진위 중 남측에서 열린 회담은 거의 빠짐없이 신라호텔 같은 특급호텔에서 열렸다.

30명 안팎의 북한 대표단이 오는데 남측에선 수백 명 규모의 회담 대표단.지원인원이 동원된다. 이들은 회담기간 중 호텔에서 숙식을 함께한다. 경비를 담당하는 수백 명의 경찰과 관계당국 요원들도 호텔뷔페 식사를 한다. 환영만찬 등에는 외부인사까지 초청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행사 예산만 3억~4억원이 쓰이고, 간접비용까지 합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는 게 회담 관계자의 얘기다.

정부 당국자는 "회담비용 절감을 위해 객실의 등급을 낮추고 만찬 초청 대상을 줄이는 등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불필요한 회담 비용을 절감해 인도적인 대북 지원에 쓴다면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이 서로 냉전시대의 대결의식을 보이며 경쟁적으로 세를 과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00년부터 남측 장관급회담 대표단이 전세기를 타고 평양에 가자 북한도 2년 뒤 7차 회담 때부터는 고려민항 직항 전세기를 타고 오기 시작했다.

당국자는 "평양회담의 경우 북한이 비용을 부담하는 게 원칙이나 만찬비용 등을 남측이 대신 내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북측은 자금난을 이유로 회담 개최가 벅차다는 호소를 자주 한다고 한다.

◆ 먼지 쌓이는 판문점 회담장=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판문점이나 개성에서 출퇴근 남북협상을 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2000년 4월 열린 판문점 준비접촉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한 차례당 900만~1200만원이 들어 여덟 차례의 회담에 7100만원이 들었다. 회담에 관여했던 관계자는 "당일 협의를 한 뒤 미진한 것은 며칠 뒤 다시 접촉해 협의하는 그때 방식이 효율적이었다"고 말했다.

판문점 남측지역에는 각각 100억원 가까운 비용을 들여 건립한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에 회담장을 만들어 놓았으나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고려대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내실 있는 회담 결과 못지않게 절차와 형식적 측면에서도 실속을 갖출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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