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도 경제흐름 알아야/최철주(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요즘 판사들이 경제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이 없다고들 야단이다. 법원이 경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판사가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수많은 투자자들의 이해가 크게 엇갈린다. 빚에 쪼들리다 못해 부도직전에 있는 기업들이 법원으로 「도피」해 보호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동산투기나 하고 회사재산을 빼돌린 형편없는 경영인들이 법정관리로 넘겨진 자신의 기업에서 번듯하게 다시 일하고 있는 현실을 볼때 부실기업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과연 옳은가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지나칠 정도 무관심
법정관리 개시전에 있는 어느 기업에서는 전사장과 깊은 관계에 있는 중역이 회사 살림살이를 맡게 되는 보전관리인으로 지명되었다. 일단 부실 기업인으로 낙인찍혔던 사람들이 어찌어찌해서 법원으로 넘어간 기업에 관여하는 일이 허다하며,이제는 그게 아무렇지 않게 여겨질 정도가 되어 버렸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기업을 은행관리로 넘겼다가 다시 사장자리에 앉은 사람이 또 엄청난 빚에 몰리자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 결정을 받은 일도 있다.
국가경영을 맡은 정치인이 아무리 큰소리 쳐도 유형·무형의 치적을 쌓지 못하면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평가돼 버린다. 기업인의 경우도 이에 못지 않게 엄격하다. 그의 능력은 이윤을 얼마나 냈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달리 평가받는다. 기업에서 꽤 수익을 올린 사람은 경영의 귀재라고 칭찬받지만 부도 낸 사람,자신의 기업을 법원의 보호하에 둔 사람은 사실상 인생에서의 끝장을 의미할만큼 냉랭한 대접을 받는다.
기업에 대한 경영인의 책임을 혹독하게 묻는 곳이 서양이다. 개인의 예금잔고를 훨씬 넘는 신용카드사용자도 발을 붙일 수 없는 곳이니 부실 기업인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회사정리법 사문화
30년전에 제정된 우리나라의 회사정리법은 앞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기업만 법원의 관리하에 두게 되어 있다. 또한 그런 기업의 관리인 등은 본래부터 이 회사와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경영인을 앉혀 또다른 부실의 여지를 사전에 봉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항은 거의 사문화 되었다.
법정관리 기업이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공중분해 될때마다 담당재판부와의 유착구조에 대한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고 심한 경우에는 해당기업이 곧 옷을 벗게되는 판사의 뒤를 봐준 대가로 그런대로 버텨오다 결국 시장경쟁에서 낙오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떠돌아 다녔다.
이같은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이냐의 여부보다는 부도에 몰리는 기업 및 기업인들에 대한 법원의 처리과정이 너무 비경제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경영을 잘모르는 변호사가 조사위원으로 선정되기 일쑤고,이 변호사는 다시 공인회계사를 채용하며,그는 또 관성적으로 해당 기업에 매우 유리한 보고서를 작성해 법원에 올리는 구조다.
도대체 살아남기 어려운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보호받아왔고 그 부담은 투자자를 포함한 국민들에게 지워졌다.
작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 로널드 코즈 교수는 법의 적용에도 경제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법률문제는 궁극적으로 경제문제 아닌 것이 없으며 결국 재산권을 누구에게 얼마만한 크기로 주느냐 하는 것으로 귀착된다는 설명이었다. 경제의 내용과 규모가 달라지고,성장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도 경제법의 운용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면 사법부는 누구를 위한 기관이냐는 당연한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국제화·개방화와 함께 시장은 점차 넓어지고 국민과 기업의 이해관계도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부실기업처리에서조차 「부실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오해」가 사라져야 한다.
이런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엉터리로 기업을 경영하다 도산한 사람이 감히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또 나올 것이고 재무제표나 주가를 조작해 소시민들의 돈을 우려내는 경영인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제 의류업에서,전자부품업에서,또는 무역업에서 번돈을 왕창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거덜난 기업인에 대해서까지 법원이 더이상 동정적이어서도,더구나 보호막을 씌워주어서는 안된다.
○부실기업 부실판결
지금까지 당대에 이름을 날리던 상당수 유명한 기업들의 부침은 냉혹한 경쟁원리의 현실을 눈여겨 보게 한다. 몇몇 학자들은 경제법도 역시 실제적인 분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산업구조 조정과정에서 업계의 많은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도산하는 기업보다는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더 많이 탄생하고 있다. 사법부도 경제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