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는 반인권 반사회 패륜행위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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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제 더이상 성범죄를 인륜과 도덕의 차원에서 한숨 쉬고 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장단기적 대책이 추진되지 않고서는 이 사회가 섹스의 범람과 성폭행의 난무속에서 갈길을 잃고 해체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팽배하고 있다.
굳이 인터풀이 집계한 성범죄 세계 3위라는 불명예를 붙일 필요도 없다. 이미 성폭행·인신매매로 부녀자가 밤낮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실정을 우리 스스로 실감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있다.
성폭행의 발생건수가 세계 3위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지만 범죄의 형태 또한 종전과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섹스문화 곳곳에 범람
중앙일보 기획취재팀의 조사에 따르면,성범죄 발생건수의 40%가 청소년들의 충동적 집단행위로 일어나고 있고,여대생 의부살인 사건에서 보듯 근친상간,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추행이 계속 늘어나는 특이현상이 일고있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신고율은 2%에 지나지 않는다.
범죄형태가 죄의식이 희박한 청소년에 의한 집단행위로 나타나고 있고,급기야는 근친상간과 같은 해괴한 행태로까지 진전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이상 이를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
우리의 산업화·도시화 과정 20여년의 흐름속에서 삶의 의식과 생활 패턴이 달라졌지만 새 사회에 맞는 의식의 틀과 질서의 규범을 미처 마련하지도 못했고 우리 스스로 노력도 하질 않았다. 가정과 학교,그리고 사회가 방치하고 열악의 분위기에 젖어있는 동안 자녀들은 커서 이제 성범죄의 주체가 되고 죄의식마저 느끼지 못하는 중증의 부도덕한 사회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을 유희 도구로 삼게끔 촉진했던 음란비디오·음란출판물은 말로만 단속인 법망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우리주변에 범람하여 골목과 가정을 파고든다. 영웅호색이라는 왜곡된 대장부적 기개는 유흥업소·퇴폐업소를 창궐시키면서 여중생 호스티스를 등장시키고 등·하교길의 여중생들이 인신매매단의 표적이 되게했다.
도시화·산업화의 이행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빠져든 함정과 덫에 우리의 다음세대가 한술 더 떠서 집단 성폭행을 떼지어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회풍조로 줄달음치게 만들었다.
이 모두 우리 스스로 저지른 잘못이 이제 부머랭처럼 되돌아와 우리의 다음세대를 병들어가게 하고 있지 않은가.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비난하기에 앞서 모든 병인을 우리 스스로에서 찾으면서 무엇을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가에 중지를 모으고 실천으로 옮길 때인 것이다.
○청소년 성범죄 심각
더이상 방치해서는 치유할 수 없다는 위기인식의 공감대 위에서 단기적 처방과 장기적 대책을 세우고 범사회적 운동으로 지속적인 추진을 해야한다.
단기적으로는 성범죄를 풍속사범이라는 안이한 자세로 방치할 일이 아니라 성과 생명을 등가의 입장에서 보고 성폭행을 한 가정의 파괴범일 뿐만 아니라 살인과 같은,또는 그 이상의 중형으로 다뤄야 한다. 이를 위해 성범죄자에 대한 특가법 형태의 특별법을 제정해서 엄벌주의 원칙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성폭력 특별법 제정을
유흥업소와 음란 만화·잡지 등 출판물과 비디오 생산업체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지속적 점검이 민생치안이라는 차원에서 검찰과 경찰의 강력한 의지로 집행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단속하고,심지어 단속사실까지 업주에 미리 알려주는 종래의 단속방식으로는 독버섯을 키울 뿐이다.
학교주변의 유해환경 일소가 말로만 되풀이 될뿐이지 오늘도 국민학교 주변에는 어린이를 상대로한 음란만화와 외설비디오 게임이 성황중이라는 보도가 있지 않은가.
성범죄 피해자의 신고율이 2%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성범죄를 촉발하고 증가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안 당하면 다행이고 당하면 쉬쉬하는 소극적이고 은폐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고선 성범죄를 척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 하나만의 피해가 아니라 이 사회를 무너뜨리는 반인권적·반사회적 범죄를 고발하고 추적하는 민주 인권운동으로 인식해야만 한다. 이것이 시민운동이고 민주정신이라고 모두가 호응하고 동참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가정과 학교가 실효성 있는 교육을 통해서 성과 생명은 동일하게 귀중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겠다.
성은 남성의 노리개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인권이고 남의 인권을 존중하고 아끼는 일이 민수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요건임을 가르쳐야 한다.
건전한 성관계가 도덕과 규범의 시민사회를 창출하는 요건이며 이를 해치는 성범죄는 반민주적·반인권적 패륜행위임을 실정법과 교육으로 부단히 가르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일은 남의 몫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 행해야할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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