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후보경선 노 대통령 의중/중립 표방속 속뜻 흘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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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위관리 연쇄접촉 은근히 YS지원설/이종찬 의원 측근선 “그럴리 없다”반박/김­이대결 백중땐 2단계 노심전파 나올수도
민자당 경선주역인 김영삼 대표·이종찬 의원간의 득표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당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의 「마음」이 과연 무엇이며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대통령은 지금까지 표면적으로 「자유경선」,「엄정한 경선관리」를 천명해 왔지만 내막적으로는 박태준 최고위원의 출마에 제동을 거는등 영향력을 미쳐왔다.
최근들어 노대통령은 정·관계 고위 관계자들을 불러 자신의 마음의 일단을 털어 놓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 뭔가 마음먹고 「노심」을 민자당 경선판에 투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자기 마음의 70%이상을 내비치는 법이 없다』는 그의 「말」과 「행동」에 대해선 여전히 이설들이 있다.
○“다른 대안이 없다”
○…지난 17일 박태준 최고위원 불출마선언을 전후해서 노대통령은 행정부의 고위관계자를 불러 자신의 의중을 전례없이 명확히 표현했다고 한다.
노대통령은 『이번 경선에서 김영삼 대표가 압도적인 승리를 얻어야 대통령선거에서 야당후보를 이기기 쉬워진다.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지만 김대표외엔 대안이 없다』며 행정부도 알아서 하라는 암시를 주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독대하고 나온 다른 정부관계자들도 『그가 일본 자민당의 예를 들어 민자당의 「계속 집권」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노대통령이 3당합당 정신으로 정치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서는 정권재창출이 제1의 당면과제』라는 점을 강조했다며 무슨 뜻인지 알만하다고 했다.
또 친김영삼 진영의 민정계원로들에게도 노심이 김대표의 지원에 기울고 있음을 직·간접으로 전하고 관망파의 친 YS화에 나서줄 것을 당부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태도는 총선직후 김대표가 「당무책임론」을 거론했을때 크게 화를 냈던 상황과는 판이한 것으로 노대통령이 4월들어 최후의 번민끝에 결론을 냈음을 의미한다고 친김진영은 풀이하고 있다.
이와 때맞춰 김대표의 노대통령에 대한 언행도 눈에 띄게 공손해졌으며 측근 민주계 전체에 경거망동 말 것과 함구령을 내렸다. 그는 비로소 겸손한 2인자의 자세로 돌아선듯 하다는 것이 친김 민정계인사들의 설명이다.
○미·영사례도 거론
○…청와대 소식통들은 이같은 「노심전파」전술이 판세에 영향을 미쳐 김대표의 우세를 지속시킬 수 있다고 판단이 서면 대통령이 더이상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김­이대결이 백중하면 좀더 공개적이고 명시적인 2단계 지원이 있을 것임을 내비치고 있다.
한때 미국도 당의 대통령후보는 선거일 3개월전에야 확정된다는 논리로 김대표의 조기경선론을 일축하던 청와대측의 말이 차츰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참모들은 레이건 미국대통령이나 대처 영국수상이 당대회에서 부시 후보와 메이저 후보를 명시적으로 밀었다는 점을 넘지시 거론하고 있다.
이제 한달도 안남은 당내 경선에서 대통령이 정치적 의사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피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경선과정의 엄정한 관리」와는 별개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노심전파는 민자당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친김진영의 김윤환 전총장은 21일 『이젠 더이상 대통령의 지원이 필요없을 정도』라며 대세가 기울었다고 자신했다.
민정계 1백57명 지구당위원장중 이미 90명이상이 친김진영에 합류했기 때문에 이들만 제대로 관리해도 승리는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김대표진영은 「노심」에 대한 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위원장이나 대의원 설득과정에서 오히려 위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불공정땐 정면대응
○…이종찬 의원측은 노대통령이 누차 경선에서 엄정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해놓고 뒤로 김대표를 지원하면 노대통령과 김대표의 불공정에 정면대응하겠다는 태세다. 그러면서 친김계의 노심해석에 오류가 많다고 지적한다.
최근 정부의 고위관계자가 이의원에게 대통령의 뜻임을 시사하며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말고 끝까지 나가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로 보아 노대통령의 진정한 속뜻은 「김대표 대통령만들기」가 아니라 「YS와 이종찬의 경합구도만들기」에 있다는 것이 이의원측의 해석이다.
노대통령은 대국민득표력이 있는 양인중 누가 당후보가 돼도 본선에서 야당후보를 누를 수 있으며 끝까지 자유경선을 유지해 민주주의를 이룬 대통령으로 남길 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청와대측의 새로운 논리개발에 대해서도 미국·영국과 정치문화가 판이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꿰어맞출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 등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의사표명이 제한적인 영향력밖에 갖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당장 안기부같은 기관의 「정치공작」으로 이어지는 표의 왜곡현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같이 명백한 불공정게임을 통해 탄생한 민자당후보는 본선에서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의원측은 그러면서도 정가에 나도는 노대통령의 「제2의 개입」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의 모지구당의 경우 대의원 10명에 대한 모의투표를 한 결과 8대 2로 이의원쪽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정작 해당 지구당위원장은 친김지지쪽으로 서명을 해버렸다고 한다. 또다른 친김쪽 서명위원장도 전당대회 대의원 전체회의에서 이의원을 밀기로 결의까지 했었다는 것이다.
바닥대의원표를 무시한 「머리」(지구당위원장)들의 친김선회가 YS진영의 단순한 설득이상의 작용때문이 아닌가 하고 반문하고 있다.
대의원 개개인에게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노대통령의 의중은 경선날까지 양후보측의 최대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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