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부정시비 군 걱정/이종구 전 국방장관(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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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군투표 제도부터 고쳐야죠”/여도 이제 군몰표 기대 말아야/「북한핵 폭격론」속뜻있던 발언
『군을 회초리로 때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몽둥이질을 해서는 안되지요.』
지난 연말 개각때 국방장관직에서 물러난 이종구 전 장관은 군부재자투표 부정으로 군에 대한 불신이 쌓일까봐 안타까워했다.
부재자투표 시비가 일어날 소지가 없지는 않았다고 솔직히 시인하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전면적인 부정」이 아닌한 비판에도 한계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6공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뜻밖에」장관직에서 물러난 이 전국방(57·육사14기)은 퇴임후 첫 기자와의 만남에서 자신의 「엔테베작전」발언은 의도적이었다는등 지난날처럼 거침없이 자기의 소신을 털어놨다. 그는 요즘 매일 오전 9시면 청담동 개인사무실에 나가고 세미나 참석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퇴임 4개월동안 딱 한차례 일본을 다녀왔을 뿐이다.
이 전장관은 『막상 퇴임하고 나니 동사무소가 어딘지,공항출입국 절차는 어떻게 하는건지 도무지 아는게 없어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라고 했다.
­군부재자투표 부정파문이 예상외로 장기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 문제를 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육군총장시절부터 현행 군부재자투표제도를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구조적인 제도개선이 없는한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만성적인 시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14대국회는 군부재자투표제도 개선문제를 최우선으로 다뤄야 할겁니다. 영외투표제와 민간인 참관제 도입 등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국방부를 비롯한 군당국의 대응방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초기 대응방법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국민이 납득할만큼 솔직히 시인하고 관련자도 최소한의 범위까지는 문책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문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봐요.
­장관재직당시 14대총선을 앞두고 군부재자투표에 관한 대비책 같은 걸 구상해 보신 적은 없습니까.
▲그런 걸 따로 구상할만큼 한가롭지 못했습니다. 지난 광역의회선거 때 여당지지율이 낮아 대통령 뵙기가 약간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달리 대책을 세운다는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군은 그 속성상 집권당을 지지하게 마련인데 그것은 개혁보다는 안정을 선호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군은 만약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가 이끄는 정당,즉 여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에서도 그렇듯이 국민들의 대군불신이 아직도 높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역사적으로는 근세사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80년 당시 국민들이 느꼈던 부정적인 대군 이미지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한때는 군의 존재이유까지 의심을 받게 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군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고 또 변화해야 합니다. 그 방향은 민주화를 지향하는 것이고 목표는 정치로부터의 홀로서기입니다. 군은 이제 국가안보를 지키는 전문가집단으로 새롭게 위치지워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야당보다는 오히려 여당이 군에 대해 정치적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군은 여야를 초월한 우리국민 모두의 것이므로 여당도 이제는 군으로부터 몰표를 기대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또 군의 지나친 대민지원 같은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군본연의 임무와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훨씬 국민을 위하는 길입니다. 「과공비례」라는 말이 있듯이 말입니다.
­최근 일본에 다녀오셨다는데 특별한 목적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런건 아닌데 옛날부터 일본을 갔다오면 늘 마음이 상해서 돌아오게 돼요. 그들이 잘사는게 배가 아파서가 아니라 바로 근세까지만 해도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앞선 민족이었는데 어찌하여 오늘 우리는 이 지경이 됐나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일본이라는 사회는 인간이 살아가는 최소한의 규범과 룰이 잡혀 있어요. 위 아래가 분명하지만 윗사람이 결코 군림하지 않습니다. 관리들의 자세는 글자 그대로 공복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이같은 유형무형의 기강이 오늘의 일본을 일으킨 원동력이며 우리가 시급히 강구해야할 것도 바로 이같은 의식의 혁명입니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우리의 치부를 보여주고 이를 선진외국과 비교함으로써 각성을 촉구케 하는 영상프로를 만들려고 했었지요. 한 TV사에서 저의 이런 의견을 반영해 프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문제와 관련,지난해 4월 이른바 「인테베식 공격론」을 주장,한때 궁지에 몰리기도 했는데 당시 이같은 발언의 배경은.
▲나중에 정부가 이 발언을 취소·번복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사전에 계산된,의도적인 발언이었지요. 당시에는 미국도 북한의 핵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후 내 발언을 계기로 전세계가 북한의 핵위험에 초긴장하게 됐지요.
그러나 당시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전략이 노출되기 때문에 아직 밝힐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나는 그때 미·일·중·소 등 주변 4강의 역학관계를 다 고려해서 한 의도적인 발언이었으며 군의 전술·전략에 관한 발언에는 불가피하게 설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두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하는동안 이 전장관은 군부재자투표 부정시비로 군의 위상이 크게 손상된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현재 놀라온 자기변신을 모색하고 있으며 국민들도 군을 대할 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대담=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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