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한 밀 수출… 미국의 억지/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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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이 북한에 극비로 소맥(밀)을 수출하고 있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식량부족으로 북한 주민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이 잘 알려진 마당에 미국의 소맥수출이 동포의 기근을 해소하는데 다소 도움이 된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한 소맥수출에 논리상 하자가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핵사찰에 소극적이라는 점 때문에 한국은 물론 일본에까지 대북한 압력수단으로 교류 및 거래자제를 요구했었다.
이같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일본은 대북한 거래를 억제하고 있고 한국의 경우도 기업의 북한 진출을 최근 거의 중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와중에 미국이 지난해 밀 1천만달러어치를 북한에 선적했고 그 대금으로 아연을 받은 것이 밝혀졌다.
미국은 이같은 수출이 미국정부의 적성국 교역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수출이 이루어진 시기가 북한 핵문제가 한창 대두되던 작년 9월 이후인 점으로 볼때 미국의 처사는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비슷한 예가 될지 모르지만 미국은 세계 제1위의 무기판매국이다. 그들은 중동을 포함,각지에 각종 무기를 팔면서 몇몇 나라가 중동에 무기를 판다고 해서 이것이 마치 세계질서를 위태롭게 만드는양 문제를 삼고있다. 작년 이맘때쯤 우리가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쌀을 수출하려하자 미국은 국제 쌀시장의 거래를 어지럽힌다며 이를 문제삼은 적이 있다. 결국 미국의 항의로 한국의 대북한 쌀 수출은 5천t 규모에서 거래가 중단됐다.
미국이 북한에 수출한 밀의 양은 15만t이며 12억달러 전량을 수출할 경우 1천8백만t에 이르게 돼 한국의 쌀거래 규모와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더 있다. 한국정부는 대북한 쌀수출 문제와 관련,미국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왔을때 이것이 밖으로 알려질까 쉬쉬 하더니 이번에는 미국의 밀수출 사실을 또 쉬쉬해 왔다.
이는 정부의 대미외교에 구멍이 뚫렸거나,아직도 미국을 무조건 큰형님으로 모시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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