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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사절” 같은 방북 일 의원들/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3일 오전 10시 일본 하네다(우전)공항. 사회당의원 1백20명,자민당의원 30명이 차례차례 비행기에 올랐다. 마치 단체 관광이라도 가는 것 같지만 실은 북한 김일성주석의 8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평양행 전세기에 오르는 모습이다. 사회당 방문단은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사회당 위원장이 직접 인솔했다.
그런데 지금 일본국회는 회기중이다. 유엔평화유지활동 협력법안,의원정수조정안,정치윤리관련법안 등이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유엔평화유지활동 협력법안의 경우 이번 회기중 통과가 안되면 의회를 해산하자는 말도 자민당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무려 1백50명이나 되는 의원이 축하사절명목으로외유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방의 경축일에 축하사절이 갈 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일본의 우방이 아니다.
이같은 일국의 통치자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1백50명이나 되는 의원이 달려가는 모습은 마치 옛날에 속국에서 조공을 바치러 가는 것 같다. 아무리 궤변에 능하더라도 이를 어떤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일 정치인들이 상궤를 벗어난 엉뚱한 짓을 하는데도 일 언론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얼핏 이해가 안간다. 국회가 열려있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집단으로 독재자의 생일축하에 떠나는데도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볼수가 없다. 과거 한국의 독재정치비판에는 그렇게도 열을 올리던 것이 일 언론이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일 언론들이 서로 먼저 북한에 지국을 설치하려고 경쟁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한 북한의 비위를 건드리려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거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짐짓 눈을 감는 일 언론의 이같은 자세는 최근의 페루사태 보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일계 후지모리 대통령이 헌법기능을 정지,각국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데도 일 언론은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89년 중국의 천안문사태때도 일본은 중국을 비난하지 않았었다.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였다. 일본이 경제대국에 걸맞은 정치대국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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