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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해산」에 국민 대부분 “찬성”/페루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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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야당·공산반군 헌정중단에 반발 거세/후지모리,군과 경찰 장악 정국 주도
개혁을 내세우며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효력을 중단시킨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의 정치도박이 페루 정국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지난 5일 이같은 초헌법적 조치를 단행한 이후 ▲야당이 지배하는 페루 의회가 후지모리를 탄핵,카를로스 가르시아 제2부통령을 새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마오쩌둥(모택동) 주의를 추종하는 공산반군이 친정부적 의원을 살해하고 경찰서 등을 잇따라 공격하는등 반후지모리 세력의 반발이 격화되고 있다.
더욱이 후지모리 대통령의 헌정중단 조치에 대해 미국·독일 등이 즉각 정치·경제원조중단으로 제재하고 있고 미주기구(OAS) 회원국들도 일제히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난하는등 외견상 외부압력도 가중되고 있다.
후지모리가 이같은 내외의 반발을 무릅쓰고 「헌정쿠데타적」 초강수를 쓴 것은 자신의 정책에 냉담한 의회와 사법부를 청소하지 않고는 더이상 정치적 입지를 확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후지모리의 「캄비오(개혁) 90」당은 상하원 2백42석 가운데 겨우 39석에 불과,그동안 다수 야당의 협력거부로 개혁입법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기득권층인 야당측은 과세대상자를 확대하고 세율을 인상하는 내용의 경제개혁입법과 공산게릴라 대책으로 군의 권한을 강화하는 국가방위제도 창설 법안등 정치입법 대다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또 페루 사법부는 정부군이 붙잡은 게릴라들을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번번히 석방,후지모리의 신경에 거슬렸다.
일본계로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편인 후지모리는 현상태가 계속될 경우 그의 당선이유였던 경제개혁이 맥없이 허물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이같은 위기의식에 발단한 후지모리의 도박은 일단 페루 국내에서는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공산반군의 테러등 폭력사태가 잇따라 발생해 정정이 불안한 상태지만 그는 군과 경찰등 물리력을 완전 장악,반격에 나설 태세다.
또 야당정치인들의 반발이 드세기는 하지만 연금되거나 지하로 잠적한 상태여서 이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고 새로 대통령에 추대된 가르시아도 아르헨티나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고 피신,「상징적」 저항외에 어떠한 실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지모리에게 무엇보다도 위안이 되는 것은 자신의 경제구조개혁과 긴축정책을 지지해왔던 대다수 국민들이 이번 헌정중단조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위있는 민간 여론조사 기구인 「다툼」(Datum)은 대법원 판사 13명을 비롯,수십명의 판사해임에 대해 응답자의 95%가,의회해산에 대해서는 85%가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한편 헌정중단직후 후지모리를 단호히 응징할 태세를 보였던 주변국들의 위협도 공포탄에 그칠 전망이어서 그에게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2억달러의 정치·경제원조를 중단한 미국은 금수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실행가능성은 없고 13일 열린 OAS 외무장관 회담도 후지모리에게 헌정중단조치 중단을 촉구하는 민주주의 회복결의안을 가결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국내외 저항이 이렇듯 「견딜만」 하더라도 후지모리의 개발독재가 곧 성공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이르다.
후지모리가 당장은 아쉬운대로 군부와 손잡고 마약·게릴라퇴치등 개혁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으나 마약거래에 깊이 개입된 비대해진 군부가 언제 등을 돌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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