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긴장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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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고정국(56)씨와 홍성란(45)씨의 거리는 멀어 보인다. 나이 차도 그렇지만 제주도의 고씨와 서울의 홍씨는 일년에 한차례 만나기 힘들다. 물론 두사람은 서로를 가까운 문인으로 꼽았다.

1988년 조선일보, 89년 중앙일보로 각각 등단한 고씨와 홍씨는 90년 고씨가 첫 시조집 '진눈깨비'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홍씨에게 건네준 게 계기가 돼 친해졌다. 홍씨는 "작품이 좋아서 고씨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지만 호감의 내용은 '비슷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아닌 '차이에서 오는 긴장'에 가까웠다.

탐색기를 거쳐 서로에 대한 선의(善意)와 믿음을 확인하는 단계가 지난 후 두 사람은 종종 '사소한 마찰'을 빚었다. 상대방 작품에서 보이는 문제점들을 가감없이 전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2년 전 한 문예지에 기고한 글에서 고씨가 홍씨의 작품을 야멸차게 비판했다. '세상은 각박해 살기 힘든데 웬 사랑타령이냐''간결한 언어에 많은 것을 담는 게 시의 매력일 텐데 언어를 남용한 것 아니냐'는 요지였다. 두 사람의 냉각기는 올해 초까지 이어졌다.

지난 10월 고씨의 시조집 '서울은 가짜다'가 나오자 홍씨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정치권.기득권층 등을 비판한 고씨의 시편들에 대해 '너무 튀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고씨는 "서로의 작품에 대한 공격이 상처로 남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작품을 꼬집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씨는 "고시인은 한때 감귤농사를 지었다. 인상도 강골인데다 시정신도 강인해 보인다. 나한테는 없는 부분들이다. 나에게서 배울 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고시인에게서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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