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경비(정치와 돈:9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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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사람 확보해놓자”총선때 이미 거액 투자/여수뇌 최고 1백억 지원설/주간연재
민자당 대통령후보경쟁이 치열해지자 각 경선희망자들의 「대권경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차례 있는 크고 작은 모임에 드는 「소소한」액수에서부터 영향력있는 인사들의 포섭에 있을지도 모를 반대급부의 비용까지 대권경비는 적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경선희망자들이 3·24총선때 대권을 겨냥해 이른바 「보약」으로 국회의원후보들에게 지원한 금액을 추적해보면 대권경비의 일단이 드러난다. 물론 당수뇌부가 선거때마다 자파 또는 일부 타파후보에게 지원해온 관행을 갖고 있지만 지난 총선거는 바로 대권의 전초전으로 인식됐기 때문에 지원대상·규모가 확보됐다.
지난 총선때 지금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당지도급인사들이 지원연설차 참석해 해당 지구당위원장에게 「실탄(선거자금)」을 은밀히 지급하는 재미있는 장면이 목격됐다.
청중의 시선이 이 거물급인사에게 모아진 사이 비서관이 후보를 재빨리 연단 뒤쪽으로 불러 눈깜짝할 사이에 봉투하나를 전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권야심가의 위원장관리차원에서 보자면 이런 경우는 당사자에게는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C급에 속한다. 이런 종류의 현장 전달,그것도 들킬 수 있는(?)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실탄지원은 대개 1천만원안팎의 인사치레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영삼 대표,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김종찬 의원등 민자당의 대통령후보희망자,계보보스들은 상당액을 투자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중 대상의 범위나 지원액으로 봐서 수위는 단연 김대표였다는게 당주변의 정설이다.
지역구후보 2백37명중 김최고위원이나 이종찬·이한동·박철언 의원등 일부 계파보스들을 빼고 나머지 모두에게 김대표는 인사차원의 자금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김대표와 별다른 인연이 없거나 친밀도가 떨어지는 후보들은 3백만∼1천만원정도에 그쳤지만 민주계 50여명이나 신민주계 30여명은 5천만원에서 1억원규모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표의 한 측근은 『옛날에 야당했던 사람들이 호주머니는 비었는데 거대한 여당조직을 움직이느라 김대표에게 지원요청이 쇄도했다』고 말했다.
『투표를 3일∼1주일 앞두고는 계파를 가리지 않고 후보들이 당사·상도동·측근자택을 불문하고 전화를 걸어 『당선이 눈앞에 보이는데 조금만 더 도와달라고 아우성쳤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관측통들은 김대표의 자금투자는 얼추 1백억원근처까지 갔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짚고 있다.
공화계를 살려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김최고위원도 자금지원에 과감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최고위원은 자파후보(약 30명)는 물론 민정계 등을 포함해 자신이 방문했던 60여곳에서 봉투를 내놓았는데 한 측근은 『지역구사정에 따라 5천만원·3천만원·1천만원 등으로 차등 지급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김최고위원은 그간 자신을 지지하는 사업가 등으로부터 받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이번에 확 푸는 바람에 금고가 거덜났다』고 말해 씀씀이의 규모를 짐작케했다.
자금동원능력이라면 김대표에게 뒤지지 않는 박최고위원도 실탄을 「폭넓게 많이」썼다는게 주변의 공통된 얘기다.
박최고위원은 1백여명에게 성의를 표시했는데 보통은 3천만∼5천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호남후보 10여명을 포함,특별관리대상 20여명에게는 1억원까지의 특급지원이 나갔다는 후문.
측근이 부인하지 않는 총규모는 50억원 안팎.
한측근은 자금출처에 대해 『박최고위원이 30여년간 대기업회장으로 있었으므로 본인능력 또는 주위의 도움으로 그정도는 동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후보는 투표일이 다가오자 「YS는 얼마를 보냈는데 박최고위원은 왜 모른 척하느냐」고 불평한 적도 있다』고 전해 실탄을 둘러싼 신경전도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오래전부터 경선을 준비해온 이종찬 의원도 액수는 최고위원급에 못미쳤지만 나름대로 제한적인 자금을 지원했다.
이의원은 특히 투표를 며칠 앞두고 노태우 대통령을 독대한후 호남 8개지구당을 돌며 후보를 도왔으며 서울·경기지역의 일부 지지세력에게도 수천만원정도 지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한동 의원은 주로 경기지역후보들을 대상으로 성의를 표시했는데 자금조달의 한계 때문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철언 의원도 월계수회 소속 핵심후보들에게 일정 수준의 물량지원을 했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계파별 지원에 비해 중앙당은 공식지원금 밖에 못대줘 중앙당이 계파정치 틈새에서 오히려 제기능을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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