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어진 계층·세대 단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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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기업 직장인 나모(44)씨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친구들은 대부분 같은 고향 출신이다. 연례모임이 중.고교 동창 모임 정도에다 가끔 가는 대학 동창 모임도 같은 지역 출신끼리 만든 모임이다. 나씨는 "주변을 돌아봐도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소득 수준 간, 세대 간 단절이 안심할 수준이 아니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외국과 달리 종교나 정치 성향에 따른 이질감은 덜한 반면 소득 수준 간, 계층 간 이질감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지역 출신, 동일한 학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두는 경향도 적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말 전국 1500명에 대한 면접조사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사회적 자본 실태 종합조사' 보고서를 최근 기획예산처에 제출했다.

◆ 소득.세대 간 사회 단절 심각=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 다른 계층과 대화를 할 때 '불편하다'고 느끼는 응답자는 22.3%, '매우 불편하다'는 사람은 2.5%였다. 소득에 따라 배타.이질적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네 명 중 한 명에 이르는 셈이다. 세대 차이가 나는 사람과 대화할 때 불편하다('매우 불편' 포함)는 비율도 24.6%로 나타났다.

반면 집단 간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비율은 종교 18.3%, 학력 18.8%, 정치 성향 18.1%, 출신 지역 차이 11.6% 등으로, 소득.세대 차이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KDI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단절의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지만 소득계층.세대 간 단절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 역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을 대할 때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0점(불신), '대부분의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10점(신뢰)으로 매긴 조사에서 평균 점수는 4.8점이 나왔다. 이는 사람들 간의 신뢰가 평균점수(5점)에도 미달한 것이다.

◆ 여전한 끼리끼리 문화=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같은 지역 출신을 친구로 두는 경향을 많이 보였다. 친구 구성 비율에 대해 응답자의 17%가 '친구들 모두가 같은 지역 출신'이라고 응답했다. 친구들의 3분의 2 이상이 동일 지역이라는 응답 비율은 33%에 달했다. 또 친구들 중에서 자신과 같은 학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3분의 2 이상이라는 응답이 29%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친구들 중 종교가 같은 사람이 3분의 2 이상이라는 응답은 15%에 머물렀다. 동일한 정치 성향의 인물이 친구의 3분의 2 이상에 이른다는 답변도 12%에 그쳤다. KDI 측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구를 구성하는 행태는 예상과 달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지역과 학력을 기준으로 친구가 되는 비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소득.학력 수준과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참여율은 정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소득 고학력자들은 레저.취미.문화활동.사이버커뮤니티.동창회 등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종친회 활동 비율은 월소득 99만원 이하가 35%였으나 500만원 이상 소득자는 26%에 머물렀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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